<학습목표>
1.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역사 갈등의 사례로 무엇이 있는지 말할 수 있다.
2.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
<유의점>
1. 한중일 간의 역사 갈등의 배경과 내용을 파악하고,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인식을 기를 수 있도록 설명한다.
2. 독일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의 역사 갈등 해결 사례를 검색하여,
이를 동아시아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1)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료1: 수요집회]
수요 집회의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이다. 1992년 1월 8일, 일본 총리의 대한민국 방문을 앞두고 시작되었으며, 그 후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2002년 3월, 500회째를 맞이하여 단일주제로는 세계 최장 기간 집회 기록을 경신하였으며, 지금도 매주 경신하고 있다.
Q1. 일본 정치가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맹렬히 비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저지른 주요 침략 전쟁에서 숨진 일본 군인과 군무원을 신격화하여 제사 지내는 장소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야기한 문제점)
특히 1978년부터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A급 전범까지 합사하였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를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는 것으로 보고 거세게 항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지고 있어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Q2. [자료1]의 수요 집회는 왜 25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을까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논의의 전개 양상)
일본 정부는 침략 전쟁 중 식민지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논의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공개 기자 회견에서 밝히자,
일본 정부에 대한 거센 비난 여론이 있었습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1993)를 발표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하였습니다.
//* [고노담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 장관이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일본군 '위안부'의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고,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압적인 사례가 많았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담화이다. *//
→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정치인들이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직접 보상과 같은 책임 있는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엔 인권 위원회를 비롯한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 등의 의회는
전쟁 범죄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라는 결의안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하였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은 여성에 대한 전쟁 범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전세계인의 의지를 담은 것입니다.
→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등 시민 단체는 이에 반발하였습니다.
유엔 여성 차별 위원회도 "한일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며,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추가자료: 수요 집회]
수요 집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로 1992년 1월 8일부터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고 있다. 처음 집회를 기획한 단체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다. 수요 집회에서는 아래의 사항들을 요구하고 있다.
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범죄 행위 인정
② 일본군 위안부의 진상 규명
③ 일본 정부와 국회의 사죄
④ 피해자에 대한 정신적 보상과 금전적 배상
⑤ 전범자 및 책임자 처벌
⑥ 일본 역사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기술
⑦ 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Q. 수요집회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
[자료2: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사람들에게 독립이라는 꿈과 용기를 주었다.
일본 정부는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본의 전쟁 목적은 자신을 지키고, 아시아를 서양의 지배에서 해방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는 것에 있다고 선언하였다.
- 『새로운 역사 교과서 검정 신청본』, 후소샤 -
[자료3: 동북공정의 왜곡 논리]
☞ 고조선은 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중국사이다.
☞ 부여족은 한국 민족과 아무 관계 없는 중국 고대 소수 민족 중 하나였다.
☞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민족이 세운 고대의 지방 정권이다.
☞ 발해는 말갈인의 나라였으므로 중국 고대 소수 민족이 세운 지방 정권이다.
//* [호산장성](중국 랴오닝성): 2009년에 중국은 고구려의 박작성 일부를 명 대 장성으로 보수하였다.
그리고 이름을 호산장성으로 바꾸어 '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표지판을 설치하였으며,
박작성이 고구려 유적지라는 기존 안내문을 폐기하였다.
2012년에는 만리장성의 길이를 헤이룽장성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하였다. *//
Q3. [자료2]와 같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 왜 주변국들이 반발할까요?
→ 일본 우익 단체가 만든 역사 교과서는 식민지 지배, 난징 대학사과 같은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면서 오히려 미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 인식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평화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주변국은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시민 단체가 연대하여 역사 교과서 왜곡 저지 운동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료2에 대한 추가자료: 일본 우익의 역사 교과서 왜곡]
일본에는 1996년 1월에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결성되었다.
새역모는 1996년 중핟교 역사교과서 7종 전체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이 기술된 것을 자학사관이라며 비판하였다.
새역모는 2000년 4월 [후소샤] 출판사를 통해
역사와 공민(한국의 일반 사회) 두 과목의 교과서에 대해 검정 신청을 하였고,
2001년 3월에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한중일 여러 단체의 비판으로 0.0039%의 채택률에 그쳤다.
2005년 검정 교과서도 0.39%의 저조한 채택률을 보였고,
후소샤는 출판사 재정 악화로 새역모가 집필한 교과서 출판을 중지하였다.
이후 새역모는 두 단체로 나뉘어 각각 [지유샤]와 [이쿠호샤]라는
새로운 출판사와 교과서 출판을 이어나갔다.
지유샤 교과서는 2011년 검정에서 3.8%의 채택률,
2015년 검정에서는 6.9%의 채택률을 보이며
점점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Q4. 한국과 중국의 역사 갈등을 초래한 동북공정의 내용과 추진 배경은 무엇일까요?
(중국 동북공정의 내용)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중국 사회과학원이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한국 고대사에 해당하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고대 중국 왕조의 지방 정권이므로
중국 역사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 동북공정의 목적)
동북공정은 조선족을 비롯한 소수 민족을 통합하여 국경지역의 안정을 꾀하고,
북한의 정세 변화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
이에 한국 정부는 '역사 주권의 침해'라며 반발하였습니다.
(중국 동북공정 관련 합의 내용)
한중 외교갈등이 커지자 양국은 이 문제를 학문 차원에 한정하고
더는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구두합의를 맺었습니다.(2004)
[자료3에 대한 추가자료: 동북공장의 왜곡 논리]
동북공정은 '동북 변강 역사 여현상 계열 연구 공정'의 줄임말로
중국 사회 과학원 산하 연구소에서 2002년부터 5년간 시행한 연구사업이다.
중국 동북3성에서 일어난 과거 역사와 현재의 문제가 주요 연구 대상이다.
동북 공정은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였던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이고 중국민족이라는 민족관을 강조하여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각 민족이 이루어낸 역사적 활동은 모두 중국사'라는
영토 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자치구들이 각 민족의 역사를 강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탈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즉 각 소수 민족이 중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도록 하여
분열 사태를 막으려는 목적이 강하다. → 동북공정의 숨은 의도
[역사 속 인물]: 정부의 역사왜곡 시도에 맞선 이에나가 사부로
→ "전쟁으로 우리 세대는 커다란 피해를 보았습니다.
많은 동료가 죽어 갔습니다. 이 막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헌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기둥은 그들의 숭고한 생명이 남긴 유일한 유산입니다.
이것을 헛되이 해서는 안됩니다."
☞ 역사학자 이에나가 사부로는 그가 저자로 참여한 교과서에서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 등 일본의 침략 전쟁 사실을 삭제하려는 교과서 검정에 반발하였다.
그는 1965년 국가를 상대로 교과서 재판을 청구하여,
32년 동안 법정 싸움을 벌였다.
마침내 1997년 일본 대법원은 교과서 검정의 위법성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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