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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고등한국사

고등한국사) 1-1-3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전(2)

by 대군장 2022. 3. 6.

<율령반포와 제도정비에 기반한 성장>

(고구려)

* 소수림왕

// 태학설립, 율령반포

 

* 광개토대왕

// 백제공격, 한강이북 차지

// 신라를 침입한 왜 물리침

// 랴오둥반로 및 만주일대 장악

 

* 장수왕

// 남진정책, 평양천도

// 한강유역 장악

 

(백제)

* 3세기후반 관료체제 기틀정비, 법령마련

* 4세기경 최대영토 확보, 전성기

 

* 5세기 후반 한성함락, 한강유역 상실

// 웅진천도

 

* 6세기 무령왕 중흥노력

* 성왕

// 사비천도

// 중앙관청 22부로 설치

 

(신라)

* 6세기 통치체제 정비

* 지증왕

// 중국식 왕호 '왕' 사용

// 국호 '신라' 확정

 

* 법흥왕

// 병부설치, 군사권을 왕에게 집중

// 율령반포

// 관리 공복 제정

// 상대등 설치 (국정총괄하는 재상역할 부여)

 

 

(법흥왕) 18년(531) 여름 4월, 이찬 철부를 상대등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하였다.
상대등이란 관직은 이때 처음 생겼으니, 지금의 재상과 같다.

- 『삼국사기』

 

* 진흥왕

// 인재양성 위해 화랑도를 국가조직으로 개편

// 한강유역 모두 장악(단양적성비, 북한산 순수비)

// 고령의 대가야 병합

// 함흥평야까지 진출 (마운령비, 황초령비)

 

 

<관등제와 지방 통치체제 정비>----------------------------------------------------------------------------------------------

* 삼국은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관등제를 확립하고 관료체제를 정비함

 

 

(고구려)

* 지배세력을 관등에 편입시켜 서열화

// 3세기 후반에 5부연맹 해체되면서

 

(백제)

* 고이왕

// 6좌평 등 관등과 공복마련하여 위계질서 확립

 

 정월에 내신좌평을 두어 왕명 출납을,
내두좌평은 물자와 창고를 .......
병관좌평은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각각 맡게 하였다.
또한 달솔, 은솔,  ...... 진무, 극우 등을 두었다.
6좌평은 모두 1품, 달솔은 2품,  ......
진무는 15품, 극우는 16품이었다.
...... 왕이 영을 내려 6품이상은 자줏빛 옷을 입고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고,
11품 이상은 붉은 옷을,
16품 이상은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 『삼국사기』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
6좌평의 관제와 관등제를 마련하고
관리의 복색을 제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료와 비문에 기록된
백제 관등의 명칭이 나오는
시기를 종합해 보았을 때
백제가 3세기경부터 관등제를
단계적으로 정비하다가
5세기 후반에 이르러
일원적인 관등제를 확립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라)

* 골품제와 관등제가 결합

* 법흥왕

// 17관등제 정비

 

* 골품제 형성

// 지방 부족장 세력이 중앙귀족으로 포섭되는 과정에서

// 자신이 속한 부의 세력에 따라 지위를 받음

 

(삼국의 지방통치체제 마련)

* 전국을 행정구역으로 편제

// 정복전쟁으로 넓어진 영토를

//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 지방관 파견

 

* 고구려

// 성을 중심으로 행정구역 구분

 

* 백제

/./ 무령왕시기 지방 22담로에  왕족 파견

// 성왕시기 전국을 5개의 방으로 나눔

 

* 신라

// 6세기경 전국을 주, 군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촌을 둠

 

<금석문을 통해 본 신라의 국정 운영 변화>-------------------------------------------------------------------------------

 

1. 포항 냉수리 신라비

 사훼부지도로갈문왕 (지증왕),
사덕지 아간지, 자숙지 거벌간지와
훼부의 이부지 일간지, 지심지 거벌간지와
본피부의 두복지 간지와
사피부의 모사지 간지,
7왕들이 함께 의논하여 명을 내린 일
 포항 냉수리 신라비는 비문 중
계미년과 지도로갈문왕(지증왕)이라는
기록을 통해
6세기 초에 세운 비석임을 알 수 있다.
지도로갈문왕과 6명의 왕(각 부의 유력자)은
진이마촌에서 일어난 재산 분쟁을
의논하여 처리한 뒤 의결사항을 공동으로 선포하였다.
비문에는 먼저 부의 이름을 기재한 뒤
소속 인원을 나열하였다.

 

 

2. 단양 신라 적성비

 왕이 명을 내리는 일,
대중등(大衆等)은 ......
고두림성에 있는 군주들인
훼부 출신의 비차부지 아간지,
훼부 출신의 조흑부지 급간지에게
명을 내리셨다.......
자(子), 도지(刀只), 소녀(小女), ......
법을 적성전사법으로 만들었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6세기 중반 진흥왕이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점령한 후
세운 비석이다.
영토 확장에 공을 세운 인물을 포상하면서
신라에 충성을 다하면
모두 포상하겠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이전의 비문과 달리
이 비문에서는
왕이 단독으로 각 부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3. 경주 남산 신성비

 신해년 2월 26일에
남산 신성을 만들 때
법에 따라 만든 지 3년 이내에
무너져 파괴되면
죄로 다스릴 것이라는
사실을 널리알려 서약하게 하였다.
 경주 남산 신성비는
6세기 말 진평왕 때
남산에 신성을 쌓고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는 신성 건립시기와
공사 담당자들의 공사의 책임에 대한 서약,
공사 참여자의 신원과
작업 구간등을 기록하였다.
이 비문을 보면,
율령이 확립된 이후
신라의 인력 동원체제와
지방통치 방식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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