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중세유럽세계의 성립과 봉건사회
6장 중세봉건사회와 교회
4절 중세교회의 발전과 서임권문제
3. 서임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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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성직자임명, 서임권 장악>
// 9~10세기 혼란속에서
// 성직자들은 강력한 국왕을 기대하고
// 그에게 의지하려함
// 이러한 상황을 국왕들이 이용함
<왕권신정론(royal theocracy)>---------
// 교황의 무력으로인해 성직자들은
// "국왕은 지상에서 신의 목자"라고 주장
→ 국왕의 세속서임은 권리남용이 아니라
→ 당연한 권리행사로 인식됨
<11세기의 국왕들>---------------------
* 주교를 지명하고 서임까지 거행함
* 교회 개혁자들의 대응
// 세속 서임권에 도전
// 왕권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기도 함
<교황의 대응>------------------------
* 로마 종교회의 (1059)
// 교황 니콜라스 2세 주최
// 교황선출에서 로마귀족 붕당과
// 독일 황제의 개입을 배제하고
// 로마교회 추기경에 의한 선출을 규정함
* 알렉산더 2세(1061~1073)
// 위 규정에 따라 처음 선출됨
// 많은 개혁 수행
// 교황권 전 유럽에 확대
// 교황사절이 도처에서 지방종교회의 개최
→ 개혁 추진
* 그레고리우스 7세(1073~1080)
// 클루니 수도원 출신
// 본명 힐데브란트
// [서임권문제]로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와 충돌
→ (1) '밀라노의 주교선출'에 대하여
→ 하인리히 4세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서한보냄
→ (2) 주교, 수도원장은
→ 세속군주에게 임명받지 말 것 규정(1075)
→ (3) '교황권에 관한 규정'(Dictatus papae) 마련
→ 교황에게 황제 폐위 권한 있다고 선언
<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우스 7세의 충돌>------
1. 그레고리우스 7세의 개혁조치
// 상기하였음
2. 하인리히 4세의 대응
// 처음에는 국내 반란으로인해 타협적
// 반란 진압후
→ 밀라노의 황제파 주교 후원 시작
3. 교황의 파문, 폐위 위협
4. 하인리히 4세의 대응
// 독일내 주교회의 소집
// 그레고리우스 7세를 찬탈자로 규정
5. 교황의 하인리히 4세 파문, 폐위 선언
6. 독일 국내의 동요
// 제후들의 반황제 움직임 표면화
// 황제 지지파 주교들도 당혹
7. 아우크스부르크 국회에서 합의하기로 결정
// 1077년
// 교황 주재
// 귀족과 주교로 구성
8. 카노사의 굴욕
// 1076년 말 교황은 국회 참석하기 위해 북상
// 하인리히와 '카노사'에서 마주침
// 하인리히는 교황에게 용서를 빔
9. 독일 3년간의 내란상태 지속
// 하인리히 4세는 자파세력 구축
// 반황제파는 따로 황제 후보자 옹립
10. 내란종식과 하인리히 4세의 반격
// 하인리히 4세, 1080년 반대파에 승리
// 교황에 대한 공세 시작, 이탈리아 진출
// 로마에서 허수아비 교황 세우고 대관식 거행
11. 그레고리우스 7세 피신
// '노르만'의 보호를 받음
// 수개월 후 사망
<이후의 서임권문제 해결 노력>-----------------
* 우르바누스 2세 (1088~1099)
// 서임권 문제 포함한
// 그레고리우스 7세의 개혁안 추진
* 영국
// 켄터베리 대주교 성 안셀모
→ 개혁시도
→ 해결하지 못하고 12세기 돌입
<영국에서의 서임권문제 해결>-------------------
* 교회와 국왕의 타협안 마련(1107)
// 교황 파스칼 2세(1099~1118) 시기
// 성 안셀모-국왕 헨리 1세 사이 타협안 마련
→ (1) 주교는 교회 내에서 선출하되
→ 주교로 취임하기 전에 그는 국왕에게
→ 봉신으로서 신서를 하고, 국왕으로부터
→ 봉토와 그 관할권을 수여받는다.
→ (2) 국왕은 신서를 거부할 수 있고
→ 주교선출에도 강한 발언권 행사가 가능하다.
→ 거의 같은시기에 프랑스도 비슷한 타협 성립
<독일에서의 서임권문제 해결>------------------
* 하인리히 5세(1106~1125)
// 로마점령
// 대관식 사전준비로 교황에게
// 서임권문제 해결 강요
* 파스칼 2세
// 영국, 프랑스에서의 타협에 불만족
// 더욱 철저한 개혁안 제시
// 세속군주가 주교서임권을 요구하는 것은
// 주교가 봉토와 그 관할권을
// 보유하기 때문이라 판단
// 따라서 이를 포기한다면
// 세속군주의 요구근거 사라질 것이라 판단
→ 주교들이 봉토를 포기하고
→ 오직 영적세계 관장에만 전념할 것을 제안
→ 핵심을 찌른 것이지만 비현실적
→ 추기경, 주교, 교회 내 반대 컸음
* 보름스협약(1122)
// 칼릭스투스(1119~1124)와
// 하인리히 5세 사이에 체결
// 서임권문제 일단락
→ 영국, 프랑스의 타협안과 유사
→ 독일에서는
→ 국왕이 주교선출에 직접 참석할 권리를
→ 보유한다는 점이 첨가됨
→ 주교선출의 기준이 강화됨
<교황권의 강화>----------------------------------
* 교황이 그리스도교 세계 최고권력자임이 인정됨
* 12세기 초 통일적인 교회법전 없었음
* 지방교회 전체에 대한 정보망도 없었음
* 개혁적인 교황의 대응
// 교황사절을 이용
// 주교, 대주교의 로마방문 권장
→ 그들로부터 필요한 정보획득, 그러나 불충분
* 12세기 이후 교황의 상황
// 중앙집권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 기구와 법 마련할 필요가 있었음
//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위에 오른것
<서임권문제 투쟁의 결과>--------------------
// (1) 교회와 국가의 지속적인 대립과 긴장이라는
// 중세정치의 한 특성인 이원성을 강하게 부각시킴
// (2) 교회, 국가 내에서도 지배자에 대한 반항권을
// 내세우는 경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옴
→ 영국, 프랑스의 경우 당장은 문제되지 않았음
→ 프랑스왕은 너무 미약했고
→ 영국왕은 매우 강력했기 때문
→ 독일이 해당됨
* 독일에서 지배자에 대한 반항권 내세우는 경향 증가
// 서임권 문제 발생무렵
→ 하인리히 4세는
→ 지방제후들을 누르고
→ 강력한 왕권을 수립할 찰나에 있었음
// 서임권문제의 발생으로
→ 독일 지방제후에게 왕권에 대항하는 기회를 줌
→ 독일에서 강력한 왕권수립 좌절
// 지방할거주의 강화
→ 하인리히 5세 아들없이 사망
→ 지방제후들은 무력한 작센공을 왕으로 선출
→ 왕권 잠식
// 영주제 강화
→ 영주들이 소농을 압박하여 농노화
// 봉건제의 전국 확산
→ 지방제후들은
→ 종전의 주백의 권한(countship)과
→ 재판권을 장악하고,
→ 소영주들을 그들의 봉신으로 만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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