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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 선위동

삼국시대와 진의 통일

by 대군장 2022. 11. 15.

1.삼국의 분립
* 성립 배경: 3세기 초 후한의 멸망으로 위촉오 분립

* 위나라(220~265)
ㄱ. 조조의 세력형성
a. 구현령: 재능기준 인재선발 표방
b. 병호제: 모병, 투항병 등에게 세습적 병역 의무 부과(병농분리)
c. 둔전제: 국유지 경작(모집, 강제이주)하는 둔전민 편성, 수확량의 5~60% 징수

ㄴ. 조비의 건국
a. 구품관인법: 호족세력의 지지 확보를 위해 실시(220)
b. 건국: 세족의 지지를 얻어 건국, 수도 낙양

ㄷ. 사마염의 찬탈
: 조씨세력의 쇠약, 사마씨 세력의 강성으로 찬탈(265)



* 촉나라(221~263)
ㄱ. 건국: 유비의 건국(221), 한나라의 정통성 계승 표방, 도읍 성도
ㄴ. 영향: 운남 정복, 한중 개발



* 오나라(222~280)
ㄱ. 건국: 손권의 건국(222), 도읍 건업
ㄴ. 영향: 호남, 강서, 복건 방면 개발, 남해무역의 기반마련


* 형세
: 영토는 삼국이 대등하나 국력과 인구 등은 위나라가 압도적




2. 진의 통일 -------------------------------------------
무제(265-290)
혜제(290-306)
회제(306-313)
민제(313-316)



* 등장
: 사마염이 위나라에서 '선양'의 방식으로 건국, 삼국통일 완수


* 조세제도
ㄱ. 점과전제
- 목적: 무분별한 토지 겸병의 규제, 소농민에 대한 국가 규제 재시도
- 점전: 일반 농민 1호당 약 100무의 전토 지원 (남자 70무, 여자 30무)
- 과전: 1호당 70무 기준(남자 50무, 여자 20무) 강제 경작 후 조세 징수
- 영향: 생산력 회복으로 인한 호수의 증가(북위 균전제로 계승)


ㄴ. 호조식
: 호당 견 3필, 면 3근, 여자와 준성인의 호는 절반의 부담 규정

* 호조식과 점과전제의 시행
- 진서 식화지

오나라를 평정한 뒤 호 단위의 조세규정(호조지식)을 정하였다. 정남이 있는 호는 매년 비단 3필과 고치솜 3근, 여자와 차정남만으로 구성된 호는 그 반을 낸다.
변경지역의 경우 2/3을 내고 더 먼 곳에서는 1/3을 낸다. ......
남자는 1인당 70무, 여자는 30무씩 '점전'한다. 그 밖에 '과전'은 정남이 50무, 저녀는 20무씩인데 차정남은 정남의 반이고 정녀가 아닌 여자는 과전하지 않는다. ......
1품에서 9품까지 귀천에따라 점전하는데 1품은 50경, 2품은 45경 ...... 9품은 10경이다. 또한 품관의 높고 낮음에 따라 '음'으로 친속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선조와 후손 각 4대까지 미칠 수 있고, 적은 경우도 그 부모와 자식에게는 혜택이 미친다.


* 봉건제 시행
- 배경: 위나라 멸망의 원인을 황족의 억압으로 인식
- 내용
a. 봉건: 총 27명에 달하는 사마씨 일족을 제왕으로 봉건(봉토, 호구)
b. 겸직: 각종 장군, 도독 직책 겸직, 지방 군부의 병력 통솔

* 봉건제의 시행
- 자치통감

황제는 위나라가 고립되었던 폐단을 경계하였으므로 종친을 크게 책봉하고 직임을 주었다.
또한 여러 왕들에게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봉국 안에서 '장리'를 선발하도록 명령하였다.



* 8왕의 난
- 배경: 혜제의 무능(숙맥불변)과 황후 가씨의 농락 >>> 조왕 '윤'의 거병, 혜제 추방
- 과정
a. 5호의 진출: 8왕의 난 와중에 북방 유목민 이용(유입)
b. 동해왕 월: '회제'를 옹립하며 일시적으로 대결 종식

- 결과
a. 영가의 난
> 발단: 8왕의 난 이후 혼란한 상황 속 남흉노 출신 '유연'이 '한' 건국(304)
> 유총: 낙양함락(회제 살해) >> 장안함락(민제 살해), 서진 멸망(316)

b. 사회혼란
> 유민의 발생, 농민 반란 및 강남 이동 촉진

- 의의
: 호한체제의 시작

* 5호 16국 시대의 개막
- 진서

'호'는 원래 흉노라는 포악한 침략자들이었습니다. 전한 선제 때 추위와 굶주림으로 쇠약해져
나라가 다섯 개로 쪼개졌다가 다시 둘로 합쳐졌으나, 결국 '호한야선우' 때 자립이 불가능할 만큼 쇠퇴하여
변경 가까이에서 의탁하며 순종하였습니다.

후한 건무연간에 남흉노의 선우가 다시 항복해오자 변경 안으로 들여 사막 남쪽에 살게 하였는데,
몇 세대가 지난 뒤 역시 자주 반란을 일으키니 하희, 양건 등이 토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흉노의 다섯 부락 무리들은 수만 호에 이르러 인구가 서쪽의 오랑캐들보다 많아졌습니다.
형양의 고구려도 본래 요수 동쪽의 변경 밖에 살았는데,
위나라 소제 정시 연간에 유주자사 관구검이 그 반란세력을 치고 옮겨온 잔당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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