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중세유럽세계의 성립과 봉건사회
7장 유럽중세세계의 발전
3절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4. 황제와 교황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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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치발전은
// 영국, 프랑스와 달랐음
<독일의 상황>--------------------------
* 보름스협약(1122)
// 서임권문제 일단락
* 제위다툼
// 벨펜공가, 호엔쉬타우펜공가
// 이탈리아에 까지 파급됨
// 교황파: 겔프파
// 황제파: 기벨린파
→ [겔프]: Welf에서 유래
→ [기벨린]: 호엔쉬타우펜가령인 Waibling에서 유래
<프리드리히 1세 : 1152~1190>----------------------
* 호엔쉬타우펜 왕조 개창
* 하인리히 사자공과의 충돌 회피
// 막강한 적대세력, 벨펜가
* 독일을 봉건국가로 조직함
// 대제후에게 영지내 자유재량권 인정
→ 대가로 황제에 대한 신종 요구
// 소제후, 귀족을 대제후의 신하로 만듦
* 혼인을 통해 부르군드왕국 접수
* 이탈리아로 진출
// 롬바르디아에서 황제권 회복꾀함
// 교황과의 충돌을 초래
* 롬바르디아의 대응
// (1) 도시상인과 귀족이 연합
// (2) 황제의 대관을 겸하던
// 주교의 정치권력 박탈
// (3) 자치적 도시공동체(commune) 결성
* 롬바르디아 도시동맹(Lombard League) 결성
// 계기: 밀라노에서의 반황제파 봉기 실패(1162)
// 레냐노에서 황제군 격파
* 화평 체결
// 프리드리히와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 화평 이후
// 프리드리히는 중부이탈리아로 진출
// 투스카나, 스플레토 등
// 시칠리아와 친선도모
→ 황태자비: 시칠리아왕의 숙모 콘스탄스
* 십자군 참전중 소아시아 하천에서 익사
<이후의 이탈리아>-----------------------
* 프리드리히의 후계자들
// 교황과의 대립을 회피하고
// 중부이탈리아, 부르군드의 수입을 이용하여
// 독일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을 도모할 수 있었으나
// 이 길을 택하지 않고
// 이탈리아정책에 힘씀
* 독일, 이탈리아
//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로의 발전 봉쇄됨
<하인리히 6세 : 1190~1197>---------------------
* 시칠리아 왕위 요구
// 시칠리아 왕이 후계없이 사망
// 왕비 이름으로 왕위 요구
* 시칠리아에 영향력 행사
// 시칠리아왕국 주요 직책에
// 독일인 관리 배치
* 하인리히 6세의 영토
// 독일, 부르군드, 이탈리아, 시칠리아
<벨펜가의 오토(Otto)>------------------
* 하인리히 6세 사망
// 프리드리히 2세는 어린나이
* 영국왕 리처드의 후원으로 왕위에 오름
* 양 가문의 대립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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