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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3편7장3절 / 4. 황제와 교황의 대립

by 대군장 2022. 3. 19.

3편 중세유럽세계의 성립과 봉건사회

7장 유럽중세세계의 발전

3절 중세봉건왕정의 발전

4. 황제와 교황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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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치발전은

// 영국, 프랑스와 달랐음

 

<독일의 상황>--------------------------

* 보름스협약(1122)

// 서임권문제 일단락

 

* 제위다툼

// 벨펜공가, 호엔쉬타우펜공가

 

// 이탈리아에 까지 파급됨

// 교황파: 겔프파

// 황제파: 기벨린파

→ [겔프]: Welf에서 유래

→ [기벨린]: 호엔쉬타우펜가령인 Waibling에서 유래

 

<프리드리히 1세 : 1152~1190>----------------------

* 호엔쉬타우펜 왕조 개창

* 하인리히 사자공과의 충돌 회피

// 막강한 적대세력, 벨펜가

 

* 독일을 봉건국가로 조직함

// 대제후에게 영지내 자유재량권 인정

→ 대가로 황제에 대한 신종 요구

// 소제후, 귀족을 대제후의 신하로 만듦

 

* 혼인을 통해 부르군드왕국 접수

 

* 이탈리아로 진출

// 롬바르디아에서 황제권 회복꾀함

// 교황과의 충돌을 초래

 

* 롬바르디아의 대응

// (1) 도시상인과 귀족이 연합

// (2) 황제의 대관을 겸하던

// 주교의 정치권력 박탈

// (3) 자치적 도시공동체(commune) 결성

 

* 롬바르디아 도시동맹(Lombard League) 결성

// 계기: 밀라노에서의 반황제파 봉기 실패(1162)

// 레냐노에서 황제군 격파

 

* 화평 체결

// 프리드리히와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 화평 이후

// 프리드리히는 중부이탈리아로 진출

// 투스카나, 스플레토 등

// 시칠리아와 친선도모

→ 황태자비: 시칠리아왕의 숙모 콘스탄스

 

* 십자군 참전중 소아시아 하천에서 익사

 

 

<이후의 이탈리아>-----------------------

* 프리드리히의 후계자들

// 교황과의 대립을 회피하고

// 중부이탈리아, 부르군드의 수입을 이용하여

// 독일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을 도모할 수 있었으나

// 이 길을 택하지 않고

// 이탈리아정책에 힘씀

 

* 독일, 이탈리아

//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로의 발전 봉쇄됨

 

 

<하인리히 6세 : 1190~1197>---------------------

* 시칠리아 왕위 요구

// 시칠리아 왕이 후계없이 사망

// 왕비 이름으로 왕위 요구

 

* 시칠리아에 영향력 행사

// 시칠리아왕국 주요 직책에

// 독일인 관리 배치

 

* 하인리히 6세의 영토

// 독일, 부르군드, 이탈리아, 시칠리아 

 

 

<벨펜가의 오토(Otto)>------------------

* 하인리히 6세 사망

// 프리드리히 2세는 어린나이

 

* 영국왕 리처드의 후원으로 왕위에 오름

* 양 가문의 대립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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