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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1부2장2절 / 1. 상, 주의 교체와 주공의 동방경영

by 대군장 2022. 3. 24.

1부 중국문명의 형성과 발전

2장 상, 주의 정치와 사회

2절 서주의 봉건체제

1. 상, 주의 교체와 주공의 동방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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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를 건국한 주족>

* 농업신 후직(后稷)의 자손이라 전해짐

* 섬서성 위수(渭水) 유역에서 흥기

// 농경에 적합

// 감숙방면에서의 서방문화 유입통로

 

 

<고공단보(古公亶父)>---------------------------

* 후직 12대손, 주 무왕의 증조부

// 주왕조 성립전 주족의 추장

→ 융적의 침입을 피해 [빈]에서 [기산]으로 이주

→ [기산], 정확하게는 [주원(周原)]

→ 융적의 풍속을 버리고 농경에 종사

→ 이때부터 [주]라는 명칭 사용

→ 성곽, 궁실 축조, 읍락 구성

 

* 기록상 상의 무정(武丁)시기 이후 1~2세기 이후의 일

// (그러나) 갑골문

→ 무정시기부터 주방(周方)을 토벌하는 일을 점침

→ 고공단보 이전에 주나라는 상을 위협했던 존재

 

 

<계력(季歷)>------------------------

* 고공단보의 막내아들

* 상왕 문정(文丁)에 의해 살해됨

 

 

<서백(西伯) 문왕(文王) 창(昌)>-------------------

* 50년간 통치

* 기산의 기슭에서 [풍](豊)으로 천도

*

// 관중평야의 요충지

// 상을 무너뜨리는 전진기지 역할

 

 

<무왕(武王)>---------------------------------

* 은주혁명(殷周革命) (기원전 1046)

// 즉위 12년만에 서방의 제후 규합하여 정벌

// 6백년 지속되던 상왕조 멸망

 

 

* 의의

// 단순한 왕조교체 이상

 

// 이후 등장하는 [서주]에 새로운 통치원리 등장

→ 상왕조는 장기간에 걸친 읍제국가의 틀 속에서

→ 점차 왕권을 강화시켰음

→ 세습화가 진행되면서  전제화가 이루어졌지만,

→ 통치기반은 여전히

→ 원시적 종교관에 기초한 신정적 성격

→ 은주혁명으로 새로운 통치원리 등장

→ 천명사상, 혈연적 종법제에 따른 봉건제

 

 

<상나라 정복 이후 무왕>--------------------------

* '봉건'에 착수함

// 일족, 공신에게 토지분배

 

* 수도를 [풍]에서 [호](鎬)로 옮김

// 당시에는 종주(宗周)라 부름

 

* 상 정복 2년만에 병사

 

 

<성왕(成王)>--------------------------------

* 어린나이에 즉위

 

* 주공(周公) 단(旦)의 섭정(攝政)

// 왕이되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불확실

 

// (1)  [삼감의 난] (三監)

→ 상의 옛 땅에 봉해진 무왕의 동생

→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 상조의 후예 [녹보](祿父)와 함께 일으킴

→ 주공의 진압 3년 걸림

 

// (2) 삼감

→ 주 무왕의 상 정복 후

→ 상 유민을 감시하기 위해

→ 관숙, 채숙, 곽숙을 파견, 이들을 삼감이라 함

→ 이들이 녹보와 연합해 반란을 일으킴

→ 주공이 섭정을 하면서 삼감을 폐지함

 

// (3) 주공의 통치

→ 상의 유민을 동원하여 [낙읍]을 건설

→ 낙읍을 동방통치의 전진기지로 삼음

→ 낙읍을 [성주]라고도 함

→ 성왕은 수도를 종주에서 성주로 옮기려함

 

→ 종주는 성왕이 머물고

→ 성주는 주공이 남아 동방을 다스림

→ 주의 영토 분할?

 

 

<서주의 몰락과 동주시대로의 진입>--------------------

* 융적의 침입 (기원전 771)

// [종주]가 파괴됨

// 수도를 [성주]로 옮김

→ 이때까지를 [서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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