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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4편9장3절 / 4. 루터의 종교개혁

by 대군장 2022. 4. 20.

4편 중세로부터 근대로의 이행

9장 근대사회의 태동

3절 종교개혁

4. 루터의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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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게시 이후>

* 교회

// 처음에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음

 

* 독일 전역에 전파

// 독일어로 번역됨

// 인쇄술의 덕택으로 전국에 전파되어

// 큰 반응을 일으킴

 

* 라히프치히 공개토론(1519)

// (1) 루터 vs 에크

→ 에크(Johann Eck)

→ 이골슈타드 대학 신학교수 (Igoldstadt)

 

// (2) 루터의 인식변화

→ 처음에는 자신의 견해가 가톨릭 교리에

→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토론에 임함

 

→ 유능한 토론자인 에크의 추궁을 받게되자

→ 루터는 정통적인 교리를 인정하면서

→ 자기 입장을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음

 

// (3) 루터의 결심

→ 교황과 교회를 떠나야한다는 인식을 갖게됨

 

// (4) 루터에 대한 평가

→ "루터는 그러한 생각없이, 또는 자기 의사에 반하여

→ 기묘하게도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인물이 되었다."

 

 

<루터의 논문발표 1520>-----------------------------

1. <독일 국민의 귀족에게 고함>

(Addres to the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 (1) 성직은 반드시 신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

// (2) 독일귀족은 독일을 로마로부터

// 해방시키고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 접수하라

 

2. <교회의 바빌론 유수>

(On 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

// (1) 교황과 성사제도 공격

 

3. <그리스도인의 자유>

(On the Freedom of a Christian Man)

// (1) 의인설을 중심으로 자신의 새로운 신앙 전개

 

 

<루터와 교황의 대립>-----------------------

* 루터의 논문발표 (1520)

* 교황칙서 불사름 (1520년 말)

// 기한부로 이단설을 철회하라는 내용

// 교황과 대립하게됨

 

* 황제 카알 5세의 개입

// (1) 보름스 국회 소집 (1521) - Worms

→ 군대배치, 삼엄하고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 루터에게 견해 철회 요구

→ 루터의 황제 요구 거부

→ "나는 여기 서있다, 나는 달리 될 수 없다."

→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 (2) 카알 5세의 결정

→ 루터에 대한 법의 보호 박탈

 

 

* 작센 선제후의 보호를 받게됨

// 처음부터 루터에게 호의적이었음

// 국회개회 때부터 루터 신변을 염려함

→ 부하를 배치시킴

 

// 루터가 법의 보호를 박탈당함

→ 루터를 발트부르크성에 은신시킴 - Waltburg

 

// 발트부르크 성에서 1년간 머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함

 

* 성경번역의 의의

// (1) 루터가 자기 입장을 널리 이해시키고

// 옹호하기 위한 것

// (2) 근대독일어의 발전에 공헌함

 

 

<루터 종교개혁의 확산>----------------------

* 전국적인 국민운동, 사회운동으로 확산

 

* 재세례파 운동 (Anabaptist, 再洗禮派) -1521년

// (1) 루터보다 훨씬 급진적, 사회개혁 시도

 

// (2) 주장

→ "어렸을 때의 세례는 무의식 중에

→ 받은 것이기 때문에

→ 성년에 달하여 확고한 신앙을 가졌을 때

→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

 

// (3) 토마스 뮌처(Thomas Munzer, ca. 1490~1525)

→ 재세례파 지도자 중 한 사람

→ 공산적 사회건설 주장했다고 전해짐

(확실한 증거는 없음)

 

→ 묵시록적인 '천년왕국설' 주장

→ 최후의 심판과 신의 나라의

→ 도래가 가까워졌다고 설교

 

→ [농민전쟁]의 지도자로 활약

→ 체포되어 처형됨

 

* 재세례파의 성격

// (1) 극단적인 과격파

// (2) 여러곳에서 다양하게 나타남

// (3) 모든 기존질서에 반감

// (4) 사회 하층, 무교육자가 많았음

 

// (5) 도덕률폐기론(antinomianism)

→ 기존의 법이나 도덕률이 아니라

→ 각자의 양심이 바로 법과 도덕의 원천

 

 

* 재세례파의 사회건설 사례

// (1) 라이덴의 존 (John of Leiden)

→ 네덜란드 출신 재단사

→ 1535년 재세례파 집단과 함께

→ '뮌스터'(Munster)를 점령

 

→ 공동사회 건설 시도

→ '일부다처제'를 실시하는 등

→ 현실적 혼란만 야기하고 실패함

 

* 재세례파에 대한 박해

// 모든 교파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음

 

* 재세례파와 관련된 교파들

// (1) 케이커교도 (Quakers)

// (2) 침례교 (Baptists)

// (3) 메노파 (Mennonites)

 

 

* [제국기사의 반란] (1522년)

// (1)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후텐, 지킹겐 등 중심

(Ulrich von Hutten, 1488~1523)

(Franz von Sickingen, 1481~1523)

 

// (2) 제국기사

→ 황제 직속의 독립적인 소영주들 이었으나

→ 봉건사회 붕괴, 영방국가 성립 과정에서

→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음

 

// (3) 루터의 종교개혁 지지

→ 과거의 영광된 독립적 지위를

→ 회복하려고 한 것

 

// (4) 영방군주들에 의하여 곧 진압됨

 

 

* [농민전쟁] (Peasant's War: Bauernkrieg)

// (1) 가장 규모도 크고 심각했던 사건

// (2) 1524년 6월, 슈바르츠발트 지방의

// 스틸링겐에서 농민폭동 발생

(Schwarzwald) (Stuhlingen)

 

// (3) 남부독일 일대로 확산

→ 라인란트(Rheinland)

→ 슈바펜

→ 프랑켄

→ 뒤링겐 등 (Turingen)

 

// (4) 농민들의 요구

→ 지역마다 약간씩 달랐음

→ [메밍겐 사람들의 12개조]

 (Memmingen) (Twelve Articles)

 

// (5) 메밍겐 사람들의 '12개조'

→ 농노제의 폐지

→ 봉건적 부담의 경감

→ 10분의 1세 등 교회의 착취 경감, 철폐

 

// (6) 농민반란의 사회적 구성원

→ 빈농, 부농, 광산노동자, 도시 소시민, 빈민 등

→ 광범위하게 참가

 

// (7) 1525년 진압됨

→ 적절한 지도자를 얻지 못하였음

→ 지역에 따라 온건파, 과격파 간에 이해관계 상이

→ 공동전선을 결성하지 못함

→ 영방군주, 제후들의 반격으로 진압

 

 

<루터의 태도>----------------------------

* 루터

// 농민의 아들임을 자랑함

//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은 루터의 지지를 기대함

 

* 농민반란 적극적 반대

// 반란을 미친 개 잡듯이 때려잡으라고 권고

 

* 루터의 인식

// 뮌처와 같은 광신주의자, 농민전쟁과 같은

// 과격한 반란은 다 같이

// 그의 종교개혁을 파멸시키려는

//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함

 

* 루터의 주장

// 기존권위, 권력에 대한

// 시민적 복종이

// 그리스도교적 의무

 

* 루터의 태도로인한 결과

// (1) 농민전쟁 후 그의 종교개혁

→ 독일 민중을 떠나

 

→ 영방군주를 비롯한

→ 기존의 정치적 지배세력에게 의존하게됨

 

→ 후에 루터파교회를

→ 국가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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