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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5편10장3절 / 5. 러시아의 대두

by 대군장 2022. 5. 30.

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3절 절대왕정기의 각국의 발전(2): 동유럽

5. 러시아의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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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3세, 1462~1505>

* 몽고족의 지배에서 해방

→ '타타르의 멍에'(Tartar yoke)

 

 

<이반 4세, 1533~1584>-----------------------

* 러시아의 기틀 마련

→ 근대 러시아의 사회와 국가의

→ 기본구조의 틀이 잡히게됨

 

* 러시아의 기본구조

→ 날로 확대되고 강화되어 가는

→ 농노제를 기반으로 한

→ 차르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제국가

 

 

* 이반 4세의 통치

// (1) 악명높은 비밀경찰 창설

→ 황제권 강화를 위한 것

→ 황제에 반항하는 귀족을 철저하게 탄압

 

// (2) 신흥귀족층의 성장 지원

→ 황제에게 군사적 봉사를 제공하는

→ 충실한 신하에게 토지를 주어

→ 신흥귀족층을 키워나감

 

// (3) 농민 이동 자유 박탈, 농노제 강화

→ 새로 획득한 광대한 지역으로의

→ 농민의 도망을 방지하기 위하여

→ 농민의 이동의 자유를 박탈

→ 농노제 강화

 

 

* 이반4세 시기 러시아 사회와 경제

// (1) 엘베 동쪽지역

→ 도시와 시민계급이 몰락

 

// (2) 러시아지역

→ 도시는

→ 곡물, 모피 등의 교역시장으로서 활기를 띰

→ 토착상인의 활동도 활발하였음

 

 

<이반 4세 이후>------------------------------------

* 질서가 문란해짐

// (1) 제위계승에 혼란 발생

// (2) 신 구 귀족의 갈등

// (3) 농민들의 반항 등

 

* 로마노프 왕조 성립(1613)

→ 이반 4세 왕비계통

→ 러시아의 안정 회복

 

 

* 로마노프 왕조시기 러시아 사회

// (1) 로마노프 왕조를 옹립한 신흥귀족세력 신장

// (2) 농노제가 강화됨

 

// (3) 자유농민은 계속 몰락함

→ 구귀족의 특권을 유지시키고 있던

→ '문벌제도'도 이미 유명무실해지고 있었으나,

→ 그나마 1682년에 폐지되었다.

→ 그리고 국가와 지주들의 압박에 시달린

→ 일부 농민과 코삭(Cossack)들이

→ 1670년에 돈강과 볼가강 하류에서

→ 스텐카 라진(Stenka Razin)을 주모자로

→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듬해 진압되었다.

 

 

* 17세기의 러시아

// (1)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서

//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음

 

// (2)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

 

// (3) 아시아적 성격이 강한 후진지역

→ 유럽세계와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 별개의 세계로 성장하고 있었음

 

// (4) 경제적 상황

→ 유럽 상인의 왕래는 있었으나

→ 유럽과의 직접적인 거래의 문호는

→ 백해(白海)의 '아르한겔리스크' 뿐이었음

(Archangelisk)

 

// (5) 정치적인 상황

→ 스웨덴과 폴란드가 유럽으로의 진출 저지

 

 

<표트르대제, Peotr: Peter the Great, 1682~1725>-----

→ 러시아가 유럽국가로 등장하게되는 시기

 

* 페도르(Fedor, 1676~1682)

→ 표트르의 전(前) 황제

→ 아이가 없었음

 

* 쩸스키 소보르(Zemsik Sobor)

→ 페도르가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 페도르의 전(前) 황제인

→ 알렉세이(Alexie, 1645~1676)의

→ 두번째 왕비 소생인 10세의 표토르를

→ 황제로 선출함

 

 

* 표트르의 즉위와 소피아의 섭정

→ 표트르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 그의 이복누이인 소피아가

→ 친위대인 '스트렐치'(Streltsy)의 지지를 받아

→ 섭정으로서 실권을 잡음

 

 

* 표트르의 친정

→ 소피아는 스트렐치의 방종을 통제하지 못하고

→ 1689년에 수녀원에 유폐됨

→ 표트르가 실권 장악

 

 

* 젊은시절의 표트르

→ 7척에 가까운 장신

→ 총명하고 호기심이 왕성함, 야생적 성격

→ 전쟁놀이를 즐김

→ 배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가짐

→ 형식적인 것을 싫어함

→ 궁정, 교회의 의식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음

 

 

* 친정 초기의 표트르

// (1) 투르크와 전쟁

→ 전쟁솜씨를 시험해보기 위한 것

→ 실패

 

// (2) 흑해 연안의 아조프(Azov)에서 승리(1696)

→ 네덜란드 전문가의 도움으로

→ 함대를 만들어 승리함

 

// (3) 1711년에 투르크에게 아조프 상실

→ 표트르의 정복욕 자극

→ 유럽에 대한 호기심을 환기시킴

 

// (4) 1712년 유럽 시찰여행

→ 하사관으로 신분을 감춤

→ 수많은 수행원을 거느림

 

→ 프로이센을 거쳐 네덜란드에 이르러서는

→ 조선소에서 직공으로 일도 함

 

→ 영국과 빈을 시찰하고

→ 베네치아로 가는 도중에

→ '스트렐치의 반란'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함

 

// (5) 스트렐치의 반란 진압

→ 반란자 처단

→ 스트렐치 해산

 

→ 진압과 동시에

→ 서유럽화를 통한 러시아의 근대화에 착수함

 

 

* 표트르대제의 서유럽화 정책

// (1) 생활과 풍습의 서유럽화

→ ① 신하들의 긴 수염을 깎게함

→ ② 동양식의 긴 의복을 서양식 옷으로 바꾸게함

→ ③ 귀부인들에게 가슴이 패인 옷을 입고

→ 무도회에 출석하여 술을 마시게 함

→ ④ 젊은 러시아인들을 유럽에 유학 보냄

→ ⑤ 유럽인을 초빙하여 유럽문화와

→ 특히 기술의 도입에 힘썼음

 

→ ⑥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 각종 학교를 세워 유럽식교육의 보급에 힘씀

 

→ ⑦ 사망 직전에 학술원을 설립함

 

 

// (2) 보수파의 반대

→ 급격한 서유럽화 정책에 반발

→ 표트르는 보수파의 음모를 철저하게 응징함

 

// (3) 교회 보수세력 응징

→ 수도사를 포함한 교회관계 인사들이

→ 개혁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 ① 수좌대주교(Patriarch)를 폐지함

→ ② 황제가 지배할 수 있는

→ 종교회의(Holy Synod)로 대체시킴

 

→ 이로써 러시아 교회는 국가에 더 밀착하게됨

 

// (4) 서유럽파와 슬라브파의 대립

→ 이 시기에 싹트게 됨

→ 서유럽파(Zapadniki)

→ 슬라브파(Slavophil)

 

 

 

* 표트르의 발트해 진출시도

→ 직접 유럽과 접촉하기 위함

→ 이른바 '서방으로의 창구'를 찾은 것

 

// (1) 북방전쟁(1700~1721)

→ 발트해 진출을 위해 스웨덴을 꺾어야 했음

→ ① 15세의 카알 12세가 스웨덴 왕으로 즉위

(재위, 1697~1718)

 

→ ② 표트르는 덴마크, 폴란드와 동맹을 맺음

→ ③ 스웨덴과 전쟁 시작

→ ④ 카알은 의외로 유능하여 선수를 쳐서

→ 덴마크를 공격하여 굴복시킴

 

→ ⑤ 나르바(Narva)강의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

→ ⑥ 계속 러시아를 공격하지 않고

→ 폴란드로 진격함

 

→ ⑦ 표트르는 그 사이에 군비를 정비하고

→ 군대를 강화함

 

→ ⑧ 러시아가 폴타바(Poltava)에서

→ 스웨덴군을 격파하여

→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1709)

 

→ ⑨ 카알은 투르크로 피난하여 

→ 러시아와 싸우도록 설득하였으나

→ 성공하지 못함

 

→ ⑩ 카알은 노르웨이와의 싸움에서 전사함(1718)

 

 

// (2) 니스타드 조약(Nystad, 1721)

→ 러시아는

→ 카렐리아(Karelia), 잉그리아(Ingria),

→ 에스토니아(Estonia), 리보니아(Livonia)를 획득함

→ '서방으로의 창구'를 얻게됨

 

// (3) 성 페트로그라드 건설

→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 북방전쟁 중에 네바(Neva) 하구에 건설

→ 모스크바 대신 새로운 수도로 삼음(1712)

 

// (4) 스웨덴

→ 북방전쟁 패배로 

→ 발트해를 지배하던 강대국의 지위를 상실

 

 

* 표트르의 두번째 유럽여행(1716~1717) 이후

// (1) 중앙, 지방행정 및 관료기구 개혁

→ ① 전쟁으로 수도를 자주 비우게 되므로,

→ 표트르의 부재 중 권력을 대행할

→ 9명으로 구성된 '원로원' 창설

 

→ ② 외무, 육해군, 상무, 사법, 세출입 등

→ 9개의 부서를 마련하여

→ 국무를 관장하게 하였음

 

→ ③ 군사적인 목적으로 '병사구'(兵事區)를

→ 전국에 설치하고

→ 그것을 토대로 지방행정구역 마련

 

→ ④ 지사가 임명되어

→ 중앙의 비능률적이던 수많은 기능이

→ 지방으로 이양됨

 

// (2) 군사, 사회적 측면의 개혁

→ ① 일정한 수의 세대가

→ 일정한 수의 신병을 공급하는

→ 징병제도를 마련

 

→ ② 각군 사관학교를 세움

 

→ ③ 모든 지주는 의무적으로

→ 문무의 관직을 맡아

→ 국가에 봉사하도록 강요

 

→ ④ 귀족계급은 물론이지만

→ 일반 지주층(젠트리)도

→ 국가에 대한 봉사가 요구됨

 

→ ⑤ 재산과 문벌이 없는 자라도

→ 일정한 지위(육군은 소령)에 도달하면

→ 토지와 귀족의 칭호가 주어졌음

→ 그리하여 이들은 완전히 황제에 종속하게됨

 

 

* 표트르의 재정정책

→ 끊임없는 전쟁과 개혁에 재정필요

 

→ ① 화폐가치를 저하시킴

→ ② 모든 것에 세금을 부과함

 

→ ③ 새로운 세원을 위하여

→ 종래의 '호구세' 대신 '인두세'를 신설함

 

→ 이를 위한 국세조사과정에서

→ 부동층은 농노로 기록되어

→ 농노제가 양적으로 팽창하게됨

 

→ 또한 관직자에 대한 토지의 하사도

→ 농노제 강화요인으로 작용

 

 

* 표트르의 중상주의정책

→ 유럽의 선진기술을 도입하면서

→ 중상주의정책으로

→ 러시아의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함

 

→ ① 외국기술자의 초빙

 

→ ② 면세와 면역 등 각종 특권이

→ 제조업자에게 주어짐

 

→ ③ 보호관세로서 수입을 억제함

 

→ ④ 공장주에게는 공장의 노동력으로서

→ 농노의 매매가 허용됨

 

→ 그의 산업육성책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 이로부터 러시아경제가 유럽경제에 편입되었음

 

 

<표트르대제 사망 이후>----------------------------

* 37년간 제위를 둘러싼 궁정혁명으로 어수선

→ 여섯명의 황제가 교체됨

 

→ 7년전쟁 말기에 프로이센에 대한 공격을 중지한

→ 표트르 3세(1762)도

→ 제위에 오른지 반년만에 살해됨

→ 표트르 3세의 황후 예카테리나 2세가 제위를 계승함

 


*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Catherine, 1762~1796)

// (1) 총평

→ 독일의 작은 나라의 공주출신

→ 러시아의 언어와 풍습에 잘 적응함

→ 자신의 운명을 러시아와 일치시킴

 

→ 동유럽 강대국으로서의 러시아의 지위를

→ 확고부동하게 만듦

 

→ 일생을 통하여 많은 사랑의 염문을 뿌림

 

→ 매우 총명하고 이지적, 정치적으로는 마키아벨리스트

 

 

 

// (2) 계몽사상의 영향

→ ① 디드로(Diderot)를 후원

 

→ ② 볼테르, 달랑베르(D'Alembert) 등과

→ 서신을 왕래하여

→ 계몽전제군주로 행세하려 하였으나,

→ 러시아의 현실 앞에 여제의 큰 이상은

→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함

 

→ ③ 예술가와 문필가를 격려함

 

→ ④ 프랑스에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힌

→ 과격한 서적의 유포조차 허락함

 

→ ⑤ 여제의 궁정과 귀족들은 프랑스풍에 물들어

→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 프랑스풍의 옷을 입음

 

→ ⑥ 프랑스혁명의 발생은 여제로 하여금

→ 계몽군주의 탈을 완전히 벗게 하였음

 

→ ⑥-(1) 『상크트 페테르스부르크로부터 모스크바로』

→ 라는 기행문에서

→ 러시아 전제정치의 폐단과

→ 농노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 라디쉬체프(Alexander Radishchev)가

→ 시베리아로 추방됨

 

→ ⑥-(2) 계몽사상의 위험서적도 금지됨

 

 

 

// (3) 예카테리나 2세의 정책

→ ① 그녀의 지지자들에게

→ 막대한 국유지를 하사하여

→ 세력기반을 다짐

 

→ ② 복잡하고 통일이 없던 법률을

→ 정비하고 법전화 하기 위한 

→ 위원회를 소집함(1766)

 

→ 인도적이고 계몽적인 의도였음

→ 위원회는 200회가 넘는 회의를 거듭하였으나,

→ 통일적인 법전을 만들지 못한 채

→ 1768년에 해산하였다.

 

→ ③ 각 도시와 농촌에 학교를 세워

→ 교육을 보급시킬 것을 구상하였으나,

→ 실천에 옮기지 못함

 

→ ④ 병원과 고아원 설립을 후원함

 

 

// (4) 푸가초프의 대반란(Pugachov, 1773)

→ 러시아사회에 내재하던 심한 불만과 모순의 폭발

 

→ ① 카자흐지방 농민집단인 '코삭'과

→ 농노가 합세하여 반란을 일으킴

 

→ ② 푸가초프는 농노들에게 자유와 토지를 약속함

 

→ ③ 동남러시아를 휩쓸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

 

→ ④ 1775년에 진압됨

 

 

// (5) 푸가초프의 대반란 이후의 정책

→ ① 이 반란으로 지방행정이

→ 거의 붕괴상태에 이르렀으므로,

→ 예카테리나는 전국을 50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하여

→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함

 

→ ② 여제는 지방자치를 창달시킬 뜻을 비쳤으나,

→ 실제는 황제에 의하여 임명되는

→ 귀족출신의 지방장관에게 실권이 있었으므로,

→ 이 개혁은 황제의 전제정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농노제>-------------------------------

* 16세기 이래 러시아 사회의 기반으로 작용

→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확대됨

 

 

* 예카테리나 2세 치세

→ ① 막대한 국유지의 하사로

→ 농노의 수가 크게 증가함

 

→ ② 귀족은 병역 및 세금을 면제받는 동시에

→ 농노의 운명과 영지에 대한

→ 절대적 지배권을 확보함

 

 

* 농노의 처지

→ 매매와 도박, 선물과 저당의 대상이 됨

→ 가족생활이 해체됨

→ 잔인한 학대와 혹사의 대상이 됨

 

 

* 러시아사회의 모순

→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귀족과

→ 학대에 시달리는 농민은

→ 하나의 동일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음

 

→ 지배층과 민중의 이 엄청난 간격은

→ 러시아사회의 가장 큰 모순으로 남게됨

 

 

 

<러시아의 팽창>-----------------------------------

* 러시아의 전통적인 팽창정책

// (1) 흑해 방면으로의 남하정책

// (2) 유럽방면으로의 진출

// (3) 시베리아쪽으로의 동진정책

 

 

* 시베리아 방면으로의 진출

→ 일찍부터 시작되어

→ ① 우랄산맥을 넘어 계속 동진

 

→ ② 17세기 중엽에는 오호츠크해에 도달

 

→ ③ 표트르대제 때에는 남쪽으로 진출시도

→ 흑룡강 방면에서 청나라의 제지를 받고,

→ 네르친스크(Nerchinsk)조약을 체결함(1689)

 

→ ④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는

→ 캄차카반도에 도달

 

→ ⑤ 예카테리나 2세 때에는 알레스카를 차지함

 

 

* 유럽, 흑해방면으로의 진출

→ 예카테리나 2세가 주력했던 것

 

- 유럽으로의 진출

→ 폴란드의 분할로 구체화됨

 

- 남하정책

→ (제 1차 러시아-투르크 전쟁)

→ 즉위 초에 투르크와 싸워(1768~1774)

→ [쿠츄크 카이나르지 조약](1774)으로

Kutchk Kainardji

 

→ ① 흑해연안 일대와 크리미아의 일부 획득

→ ② 흑해의 자유항행권 획득

→ ③ 보스포러스 및 다다넬스해협 통과권 획득

 

// 제 1차 러시아-투르크 전쟁 이후

→ 예카테리나는 러시아의 후원 하에

→ 비잔틴제국을 재건하려는 웅대한 꿈을 갖고

→ '세바스토폴'에 기지를 만들고

→ 제 2차 러시아-투르크전쟁을 시도했으나(1787~1791)

→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 흑해북부연안에 남아있던 투르크령을 병합하고,

→ 크리미아에 대한 러시아의 종주권을

→ 확보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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