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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5편10장3절 / 3. 프로이센의 흥기

by 대군장 2022. 5. 23.

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3절 절대왕정기의 각국의 발전(2): 동유럽

3. 프로이센의 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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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쟁 이후 독일>

* 영방국가를 중심으로 발전

// (1) 각 영방국가

→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 신분제국가(Standestaat)의 단계에서

→ 절대왕정체제로 넘어가게됨

 

// (2) 가장 부각된 영방국가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Brandenburg-Preuβen: Prussia)

 

* 16세기의 독일제국

// (1) 300여 독립적인 정치단위의 집합체

→ 대다수는 영방국가

→ 몇개의 제국(자유)도시가 포함되었으나

→ 제국도시의 정치적 의의는 부수적이었음

 

// (2) 독일의 제도사가(制度史家)

→ 중세말로부터 근대 초에 걸친

→ 제국과 영방국가를

→ [신분제국가]라고 부르고 있다.

→ 그 뜻은 황제권이나 영방군주권이

→ 국내의 제신분(Stande)에 의하여

→ 제약되고 있다는 것이다.

 

// (3) 제신분(諸身分)

→ 제국의회 또는 영방의회에

→ 출석할 권리를 가진 신분

 

→ 제국의 경우 '성속제후'와 '제국도시' 이며

→ 영방국가의 경우 '고위성직자'. '귀족'

→ 그리고 '영방도시'였다.

 

→ 그러나 영방신분의 경우

→ 일반적으로 귀족의 세력이 강하였고,

→ 성직자와 도시대표는 허약했다.

 

// (4) 영방군주

→ 영방의 내정이나

→ 외교상의 중요사항의 결정에 있어

→ 영방의 '신분제의회'(Landstande)의

→ 동의를 얻어야만 하였음

→ 군주와 신분제의회는 동권적(同權的)이었음

 

→ 따라서 신분제국가는 어떤의미에서

→ 이원적인 성격의 국가였다.

 

// (5) 절대왕정체제의 성립

→ 점차로 이러한 영방신분의

→ 군주제약의 힘은 약화되고,

→ 군주권이 강대해지면서

→ 절대왕정체제가 성립되게 되며,

→ 그 시기는 대체로 30년전쟁 이후의 일이다.

 

 

<호엔촐레른 가문(Hohenzollern)>----------------------

* 15세기 이래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 됨(17세기초)

→ 독일기사단이 개척한 프로이센 상속(1618)

 

* 프로이센 상속 이전의 브란덴부르크

// 영토

→ 라인강변의 클레페(Kleve) 등을 확보

→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 라인강변과 비스툴라강변에 영토 산재

→ 30년전쟁의 피해도 적지 않았음

 

*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1640~1688)

→ 프로이센 흥기의 기반을 닦음

 

// (1) 전쟁피해 복구

// (2) 산재한 영토를 통합

 

// (3)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체제 수립

→ ① 프랑스의 위그노 등 외국이주자 환영

→ 인구증가, 산업발전책의 일환

 

→ ② 영방신분, 특히 귀족의 정치적 권리를 누름

→ ③ 상비군을 설치

 

// (4) 귀족과 협조하는 유대관계 형성

→ ① 프로이센 귀족들의 영지 내 권한을 증대시켜줌

→ ② 귀족을 행정요직, 군대장교로 등용

 

→ [융커]로 알려진 토지귀족과 절대왕권은

→ 서유럽에서와 같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 서로 협조하는 유대관계에 서게됨

 

 

* 프리드리히 1세(1688~1713)

→ 대선제후의 아들

 

→ 위트레흐트조약으로

→ '프로이센왕'의 칭호를 얻음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3~1740)

→ 이 시기 프로이센은

→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전할 토대가 마련됨

 

// (1) 국가기구에 대한 왕의 통제 강화

// (2) 관료조직을 합리화

// (3) 상비군을 배로 늘리고 철저하게 훈련시킴

→ 군대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음

→ 그 밖의 일에서는 인색

 

// (4) 근검절약으로 국고충족

 

 

* 프리드리히 2세(대왕, 1740~1786)

// (1) 부왕이 남긴것

→ 능률적이고 충성스러운 관료조직

→ 풍부한 재정

→ 기강이 엄하고 잘 훈련된 군대

 

// (2) 프리드리히 2세의 준비

→ 젊어서 음악을 좋아하여 플루트 연주

→ 시를 즐김

→ 부왕에 의해 국가행정과 정무를 10년간 훈련

→ 28세로 왕위에 오르자마자 기회 포착

 

// (3) 오스트리아 왕위계승문제

 

- (오스트리아)

→ 왕조적으로 팽창한 나라

→ 지금의 벨기에, 이탈리아에도 영토 보유

→ 핵심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슐레지엔

 

 

- (오스트리아의 상황)

→ 핵심부에서조차 이민족이 많았음

→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된 왕조국가였음

→ 18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관을

→ 부르봉왕실에 넘겨주었으나

→ 중앙유럽의 강대국이었음

 

- (살릭법)

→ 오스트리아 내의 일부지역에서는

→ 고래의 게르만법에 의하여

→ 여자상속을 배제하고 있었음

 

- (오스트리아 황제 카알 6세, 1711~1740)

→ 딸 마리아 테레지아만 있었음

Maria Theresia, 1740~1780

 

- (국사조칙(Pragmatic Sanction))

→ 마리아 테레지아가 전 영토를

→ 상속할 수 있도록 마련

→ 국내귀족과 열강의 승인을 받음

 

- (카알 6세 사망(1740))

→ 23세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계승

→ 국사조칙을 존중하려는 나라 별로 없었음

 

-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점령)

→ 슐레지엔은

→ 섬유공업이 발달하고

→ 석탄과 철이 풍부한 지역

 

- (열강의 가담)

→ 영토획득의 기회를 보고있던

→ 프랑스, 에스파냐, 바이에른 등은

→ 프로이센의 편에섬

 

→ 영국은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함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

// (1) 유럽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 (2) 인도, 아메리카 대륙

→ 영국과 프랑스의 패권다툼

 

// (3) 해외에서의 전투

→ 승패가 가려지지 않음

 

// (4) 에익스-라-샤펠 조약(1748)으로

→ ① 현상유지가 결정됨

→ ② 마리아 테레지아는 영토의 큰 손실없이

→ 그 왕위가 확인됨

→ ③ 프로이센은 이미 1745년의

→ '드레스덴조약'으로 보유하게된

→ '슐레지엔'을 그대로 영유하였다.

 

 

* 외교혁명(Diplomatic Revolution)

// (1) 유럽 국제관계의 극적인 변화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1748년부터

→ 7년전쟁이 시작된 1756년 사이의 일

 

// (2) 가장 큰 변화는 프랑스-오스트리아 관계

 

- (프랑스)

 

→ ①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중

→ 프리드리히의 마키아벨리적인 태도에 분격

 

→ ② 전후에 프로이센이

→ 중앙유럽의 강대국으로 등장한데 위협을 느낌

 

→ ③ 슐레지엔의 탈환을 노리는

→ 오스트리아의 권유를 받아들여

→ 2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 동맹관계를 맺음

 

 

-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스(1741~1762))

→ 프리드리히 2세를 증오함

→ 프랑스, 오스트리아 진영에 가담

 

- (프리드리히 2세)

→ 3대강국에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

→ 영국에 접근

 

- (영국)

→ 해상과 식민지에서 프랑스와 대립

→ 왕실의 고향인 하노버를 지켜줄 세력을 원함

→ 프로이센과 동맹(1756, 웨스트민스터 협약)

 

 

* 7년전쟁(1756~1763)

// (1) 전쟁의 성격

→ ① 오스트리아의 슐레지엔 탈환

→ ② 프로이센의 세력을 꺾으려는

→ 프랑스, 러시아의 동조

→ ③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쟁탈전

 

// (2) 전쟁의 경과

→ 프리드리히 2세는 수적으로 우세한

→ 적대세력에 대하여 기민한 전투를 수행함

 

→ ① 프랑스군을 로스바하(Rossbach)에서

→ 격파(1757)

 

→ ② 오스트리아군을 로이텐(Leuthen)에서

→ 격파(1757)

 

→ ③ 초른도르프(Zorndorf)에서 러시아군에게

→ 승리(1758)

 

→ 그러나 점차 패색이 짙어지게됨

 

→ ④ 쿠네르스도르프(Kunersdorf)에서 참패(1759)

→ ⑤ 수도 베를린이 위기에 처함

→ ⑥ 영국은 식민지와 해상에서의 싸움으로

→ 재정적인 지원에 그치고 큰 도움이 되지 않음

 

→ 그래도 승리하게됨

→ ⑦ 1762년에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스가 사망하고,

→ 프리드리히를 숭배하는 표트르 3세가 즉위함

→ (재위기간 수개월)

 

→ ⑧ 표트르3세는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 프로이센과 강화를 체결함

→ 이로써 프로이센을 위협하던 동맹관계가 무너짐

 

// (3)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 (1763)

Hubertusburg

→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를 확인

→ 전쟁 종결

 

 

// (4) 해상과 식민지에서의 전투

→ ① 처음에는 영국이 불리했음

→ ② 윌리엄 피트 내각(1757~1761)이 들어서고

→ 인도, 카리브해, 북미대륙에서 영국이 승리

→ ③ 식민지쟁탈전에서 영국이 최종적으로 승리

 

 

* 파리조약(1763)

→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사이에 체결됨

 

→ 북미대륙과 인도에서 영국은 압도적으로

→ 우월한 지위 확보

→ 세계의 지도적인 상업 및 식민지제국이 됨

 

 

// (1) 영국

→ 프랑스로부터

→ 캐나다, 미시시피강 동쪽지역

→ 서인도제도의 일부, 서아프리카의 기지 획득

 

→ 에스파냐로부터는

→ 플로리다를 얻음

 

// (2) 에스파냐

→ 프랑스로부터

→ 루이지애나를 양도받음

 

// (3) 프랑스

→ 서인도제도의 일부

→ 인도에서 약간의 교역지 보유

 

 

* 7년전쟁 이후의 프로이센

→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

 

* 7년전쟁 이후의 프리드리히 2세

// (1) 복구작업에 전념

→ ① 전화가 심한 지역은 세금면제

→ ② 농민들에게 농기구, 종자 무상배급

→ ③ 운하, 도로, 교량 건설

→ ④ 소택지 개간, 새로운 촌락 건설

→ ⑤ 신앙에 관계없이 수많은 이주민 유치

 

// (2) 공업육성

→ ① '관방학'(Kameralismus)이라고도 부르는

→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함

 

→ 즉, '보호관세'를 설치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 수출증대와 자급자족을 위하여

→ 낙후된 산업의 보호육성에 힘씀

 

→ ② 프로이센의 기후에 별로 적합하지 않은

→ 뽕나무재배를 장려하여

→ 견직물공업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 별로 성공하지 못함

 

→ ③ 군대와 관련있는 다른 섬유공업과

→ 금속공업은 발달함

 

// (3) 그 외의 업적

→ ① 고문을 없애는 등 사법개혁 단행

→ ② 상비군을 증강함

→ ③ '제 1회 폴란드 분할'로

→ 서프로이센 획득(1772), 영토 통합

→ ④ 프로이센의 인구가 즉위당시의 약 300만에서

→ 500만으로 증가하였다.

 

* 계몽전제군주(enlightened despot)

// 프리드리히 2세

→ ①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씀

→ ② 계몽사상, 특히 볼테르를 흠모함

→ ③ 볼테르의 영향을 받아 계몽전제군주를 자처

→ ④ 스스로를 '국가 제일의 공복'이라 칭함

 

→ ⑤ 포츠담궁전에서 정무에 전념

→ 간소한 생활 속에 그의 감독의 눈초리가

→ 행정기구의 말단, 국토 구석까지 미침

 

 

→ ⑥ 젊어서는 『반마키아벨리론』을 저술함

 

→ 실제로 그의 외교와 군사행동은

→ 마키아벨리즘의 표본이었음

→ 그의 본질은 가부장적 성격을 지닌

→ 전제적인 절대군주였음

→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적인 관료제적 절대왕정국가

 

→ ⑦ 군대 지휘자로서의 토지귀족층(융커)을

→ 국가의 근간이라고 생각하여

→ 그들의 농노(Leibeigene)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함

 

→ ⑧ 중산계급을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함

 

 

 

*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평가

// (1) 긍정적 평가

→ ①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가장 위대한

→ 전형적인 애국적 독일인

→ ② 독일군주의 모범

 

// (2) 부정적 평가

→ ① 프랑스문화에 심취하여

→ 프랑스어로 글을 씀

 

→ ② 그의 말년에 일어나기 시작한

→ 독일문학의 새로운 움직임인

→ '질풍과 노도운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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