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3절 절대왕정기의 각국의 발전(2): 동유럽
3. 프로이센의 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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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쟁 이후 독일>
* 영방국가를 중심으로 발전
// (1) 각 영방국가
→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 신분제국가(Standestaat)의 단계에서
→ 절대왕정체제로 넘어가게됨
// (2) 가장 부각된 영방국가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Brandenburg-Preuβen: Prussia)
* 16세기의 독일제국
// (1) 300여 독립적인 정치단위의 집합체
→ 대다수는 영방국가
→ 몇개의 제국(자유)도시가 포함되었으나
→ 제국도시의 정치적 의의는 부수적이었음
// (2) 독일의 제도사가(制度史家)
→ 중세말로부터 근대 초에 걸친
→ 제국과 영방국가를
→ [신분제국가]라고 부르고 있다.
→ 그 뜻은 황제권이나 영방군주권이
→ 국내의 제신분(Stande)에 의하여
→ 제약되고 있다는 것이다.
// (3) 제신분(諸身分)
→ 제국의회 또는 영방의회에
→ 출석할 권리를 가진 신분
→ 제국의 경우 '성속제후'와 '제국도시' 이며
→ 영방국가의 경우 '고위성직자'. '귀족'
→ 그리고 '영방도시'였다.
→ 그러나 영방신분의 경우
→ 일반적으로 귀족의 세력이 강하였고,
→ 성직자와 도시대표는 허약했다.
// (4) 영방군주
→ 영방의 내정이나
→ 외교상의 중요사항의 결정에 있어
→ 영방의 '신분제의회'(Landstande)의
→ 동의를 얻어야만 하였음
→ 군주와 신분제의회는 동권적(同權的)이었음
→ 따라서 신분제국가는 어떤의미에서
→ 이원적인 성격의 국가였다.
// (5) 절대왕정체제의 성립
→ 점차로 이러한 영방신분의
→ 군주제약의 힘은 약화되고,
→ 군주권이 강대해지면서
→ 절대왕정체제가 성립되게 되며,
→ 그 시기는 대체로 30년전쟁 이후의 일이다.
<호엔촐레른 가문(Hohenzollern)>----------------------
* 15세기 이래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 됨(17세기초)
→ 독일기사단이 개척한 프로이센 상속(1618)
* 프로이센 상속 이전의 브란덴부르크
// 영토
→ 라인강변의 클레페(Kleve) 등을 확보
→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 라인강변과 비스툴라강변에 영토 산재
→ 30년전쟁의 피해도 적지 않았음
*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1640~1688)
→ 프로이센 흥기의 기반을 닦음
// (1) 전쟁피해 복구
// (2) 산재한 영토를 통합
// (3) 중앙집권적 절대왕정체제 수립
→ ① 프랑스의 위그노 등 외국이주자 환영
→ 인구증가, 산업발전책의 일환
→ ② 영방신분, 특히 귀족의 정치적 권리를 누름
→ ③ 상비군을 설치
// (4) 귀족과 협조하는 유대관계 형성
→ ① 프로이센 귀족들의 영지 내 권한을 증대시켜줌
→ ② 귀족을 행정요직, 군대장교로 등용
→ [융커]로 알려진 토지귀족과 절대왕권은
→ 서유럽에서와 같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 서로 협조하는 유대관계에 서게됨
* 프리드리히 1세(1688~1713)
→ 대선제후의 아들
→ 위트레흐트조약으로
→ '프로이센왕'의 칭호를 얻음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713~1740)
→ 이 시기 프로이센은
→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전할 토대가 마련됨
// (1) 국가기구에 대한 왕의 통제 강화
// (2) 관료조직을 합리화
// (3) 상비군을 배로 늘리고 철저하게 훈련시킴
→ 군대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음
→ 그 밖의 일에서는 인색
// (4) 근검절약으로 국고충족
* 프리드리히 2세(대왕, 1740~1786)
// (1) 부왕이 남긴것
→ 능률적이고 충성스러운 관료조직
→ 풍부한 재정
→ 기강이 엄하고 잘 훈련된 군대
// (2) 프리드리히 2세의 준비
→ 젊어서 음악을 좋아하여 플루트 연주
→ 시를 즐김
→ 부왕에 의해 국가행정과 정무를 10년간 훈련
→ 28세로 왕위에 오르자마자 기회 포착
// (3) 오스트리아 왕위계승문제
- (오스트리아)
→ 왕조적으로 팽창한 나라
→ 지금의 벨기에, 이탈리아에도 영토 보유
→ 핵심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슐레지엔
- (오스트리아의 상황)
→ 핵심부에서조차 이민족이 많았음
→ 이질적인 요소로 구성된 왕조국가였음
→ 18세기 초에는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관을
→ 부르봉왕실에 넘겨주었으나
→ 중앙유럽의 강대국이었음
- (살릭법)
→ 오스트리아 내의 일부지역에서는
→ 고래의 게르만법에 의하여
→ 여자상속을 배제하고 있었음
- (오스트리아 황제 카알 6세, 1711~1740)
→ 딸 마리아 테레지아만 있었음
Maria Theresia, 1740~1780
- (국사조칙(Pragmatic Sanction))
→ 마리아 테레지아가 전 영토를
→ 상속할 수 있도록 마련
→ 국내귀족과 열강의 승인을 받음
- (카알 6세 사망(1740))
→ 23세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계승
→ 국사조칙을 존중하려는 나라 별로 없었음
-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점령)
→ 슐레지엔은
→ 섬유공업이 발달하고
→ 석탄과 철이 풍부한 지역
- (열강의 가담)
→ 영토획득의 기회를 보고있던
→ 프랑스, 에스파냐, 바이에른 등은
→ 프로이센의 편에섬
→ 영국은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함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
// (1) 유럽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 (2) 인도, 아메리카 대륙
→ 영국과 프랑스의 패권다툼
// (3) 해외에서의 전투
→ 승패가 가려지지 않음
// (4) 에익스-라-샤펠 조약(1748)으로
→ ① 현상유지가 결정됨
→ ② 마리아 테레지아는 영토의 큰 손실없이
→ 그 왕위가 확인됨
→ ③ 프로이센은 이미 1745년의
→ '드레스덴조약'으로 보유하게된
→ '슐레지엔'을 그대로 영유하였다.
* 외교혁명(Diplomatic Revolution)
// (1) 유럽 국제관계의 극적인 변화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1748년부터
→ 7년전쟁이 시작된 1756년 사이의 일
// (2) 가장 큰 변화는 프랑스-오스트리아 관계
- (프랑스)
→ ①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중
→ 프리드리히의 마키아벨리적인 태도에 분격
→ ② 전후에 프로이센이
→ 중앙유럽의 강대국으로 등장한데 위협을 느낌
→ ③ 슐레지엔의 탈환을 노리는
→ 오스트리아의 권유를 받아들여
→ 2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 동맹관계를 맺음
-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스(1741~1762))
→ 프리드리히 2세를 증오함
→ 프랑스, 오스트리아 진영에 가담
- (프리드리히 2세)
→ 3대강국에 포위되어 고립된 상태
→ 영국에 접근
- (영국)
→ 해상과 식민지에서 프랑스와 대립
→ 왕실의 고향인 하노버를 지켜줄 세력을 원함
→ 프로이센과 동맹(1756, 웨스트민스터 협약)
* 7년전쟁(1756~1763)
// (1) 전쟁의 성격
→ ① 오스트리아의 슐레지엔 탈환
→ ② 프로이센의 세력을 꺾으려는
→ 프랑스, 러시아의 동조
→ ③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쟁탈전
// (2) 전쟁의 경과
→ 프리드리히 2세는 수적으로 우세한
→ 적대세력에 대하여 기민한 전투를 수행함
→ ① 프랑스군을 로스바하(Rossbach)에서
→ 격파(1757)
→ ② 오스트리아군을 로이텐(Leuthen)에서
→ 격파(1757)
→ ③ 초른도르프(Zorndorf)에서 러시아군에게
→ 승리(1758)
→ 그러나 점차 패색이 짙어지게됨
→ ④ 쿠네르스도르프(Kunersdorf)에서 참패(1759)
→ ⑤ 수도 베를린이 위기에 처함
→ ⑥ 영국은 식민지와 해상에서의 싸움으로
→ 재정적인 지원에 그치고 큰 도움이 되지 않음
→ 그래도 승리하게됨
→ ⑦ 1762년에 러시아 여제 엘리자베스가 사망하고,
→ 프리드리히를 숭배하는 표트르 3세가 즉위함
→ (재위기간 수개월)
→ ⑧ 표트르3세는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 프로이센과 강화를 체결함
→ 이로써 프로이센을 위협하던 동맹관계가 무너짐
// (3)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 (1763)
Hubertusburg
→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를 확인
→ 전쟁 종결
// (4) 해상과 식민지에서의 전투
→ ① 처음에는 영국이 불리했음
→ ② 윌리엄 피트 내각(1757~1761)이 들어서고
→ 인도, 카리브해, 북미대륙에서 영국이 승리
→ ③ 식민지쟁탈전에서 영국이 최종적으로 승리
* 파리조약(1763)
→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사이에 체결됨
→ 북미대륙과 인도에서 영국은 압도적으로
→ 우월한 지위 확보
→ 세계의 지도적인 상업 및 식민지제국이 됨
// (1) 영국
→ 프랑스로부터
→ 캐나다, 미시시피강 동쪽지역
→ 서인도제도의 일부, 서아프리카의 기지 획득
→ 에스파냐로부터는
→ 플로리다를 얻음
// (2) 에스파냐
→ 프랑스로부터
→ 루이지애나를 양도받음
// (3) 프랑스
→ 서인도제도의 일부
→ 인도에서 약간의 교역지 보유
* 7년전쟁 이후의 프로이센
→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구축
* 7년전쟁 이후의 프리드리히 2세
// (1) 복구작업에 전념
→ ① 전화가 심한 지역은 세금면제
→ ② 농민들에게 농기구, 종자 무상배급
→ ③ 운하, 도로, 교량 건설
→ ④ 소택지 개간, 새로운 촌락 건설
→ ⑤ 신앙에 관계없이 수많은 이주민 유치
// (2) 공업육성
→ ① '관방학'(Kameralismus)이라고도 부르는
→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함
→ 즉, '보호관세'를 설치하여 수입을 억제하고,
→ 수출증대와 자급자족을 위하여
→ 낙후된 산업의 보호육성에 힘씀
→ ② 프로이센의 기후에 별로 적합하지 않은
→ 뽕나무재배를 장려하여
→ 견직물공업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 별로 성공하지 못함
→ ③ 군대와 관련있는 다른 섬유공업과
→ 금속공업은 발달함
// (3) 그 외의 업적
→ ① 고문을 없애는 등 사법개혁 단행
→ ② 상비군을 증강함
→ ③ '제 1회 폴란드 분할'로
→ 서프로이센 획득(1772), 영토 통합
→ ④ 프로이센의 인구가 즉위당시의 약 300만에서
→ 500만으로 증가하였다.
* 계몽전제군주(enlightened despot)
// 프리드리히 2세
→ ① 음악을 좋아하고 시를 씀
→ ② 계몽사상, 특히 볼테르를 흠모함
→ ③ 볼테르의 영향을 받아 계몽전제군주를 자처
→ ④ 스스로를 '국가 제일의 공복'이라 칭함
→ ⑤ 포츠담궁전에서 정무에 전념
→ 간소한 생활 속에 그의 감독의 눈초리가
→ 행정기구의 말단, 국토 구석까지 미침
→ ⑥ 젊어서는 『반마키아벨리론』을 저술함
→ 실제로 그의 외교와 군사행동은
→ 마키아벨리즘의 표본이었음
→ 그의 본질은 가부장적 성격을 지닌
→ 전제적인 절대군주였음
→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적인 관료제적 절대왕정국가
→ ⑦ 군대 지휘자로서의 토지귀족층(융커)을
→ 국가의 근간이라고 생각하여
→ 그들의 농노(Leibeigene)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함
→ ⑧ 중산계급을 이해하지 못하고 멸시함
*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평가
// (1) 긍정적 평가
→ ①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가장 위대한
→ 전형적인 애국적 독일인
→ ② 독일군주의 모범
// (2) 부정적 평가
→ ① 프랑스문화에 심취하여
→ 프랑스어로 글을 씀
→ ② 그의 말년에 일어나기 시작한
→ 독일문학의 새로운 움직임인
→ '질풍과 노도운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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