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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5편10장4절 / 3. 혁명으로의 길

by 대군장 2022. 6. 21.

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4절 영국의 절대왕정과 혁명

3. 혁명으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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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1세로서 튜더왕조 단절

 

<제임스 1세>---------------------------------------------

✔ 메리스튜어트의 아들

✔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6세

✔ 영국왕으로 즉위(재위 1603~1625)

✔ 절대왕권과 의회 및 국민과의 원만한 관계 사라지게됨

 

『자유왕국의 진정한 법』

→ 영국왕이 되기 전에 쓴 논문

→ 왕권신수설을 주장

→ 영국왕이 되자 실천에 옮기려함

→ 대륙형의 절대왕정 지향

 

왕권신수설을 첫번째 의회에서 표명함

→ 놀란 하원은 곧 반대의사를 표명함

→ 절대왕권과 의회와의 대립의 씨앗

 

종교정책

① 지금도 영어사용 국민이 사용하는

 흠정판성경(King James Version)을 만듦(1611)

 

② 청교도에 대한 압박을 시작함

→ 제임스의 신념

→ "주교가 없으면 왕도 없다."(No bishop, no king)

 

→ 제임스에게 청교도란 

→ 영국국교회의 주교(감독)제도를 파괴할 

→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 것이다.

 

 

청교도들의 대응

① 박해를 피하여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감(1620)

 

 

의회의 대응

→ 왕이 필요로 하는 재정적 뒷받침을 하지 않음

 

 

의회의 대응에 대한 제임스 1세의 대응

① [덕세](benevolence) 징수

→ 직접 개인에게 부과하는 세금

 

→ 이에 대한 거부사건을 지지한 까닭으로

→ 에드워드 코크(Edward Coke)가 대법관직에서 파면되자

→ 절대왕권의 전제정치는 세인의 주목을 끌게됨

 

 

제임스1세,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종식시킴(1604)

→ 에스파냐상선의 습격과 약탈을

→ 일삼던 사람들에게는 불만

 

 

제임스1세, 왕자비를 에스파냐 왕실에서 맞으려 함

→ 의회는 의회의 권한을 강조한

→ [대항의서](Great Protestation, 1621) 제출하고 반대

 

→ 결국 왕자비는 프랑스왕실에서 맞이하였나,

→ 이것 역시 의회나 국민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음

 

 

 

<찰스 1세, 1625~1649>------------------------------------

* 평가

→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인물

→ 국왕으로서는 부왕보다 영국을 이해하지 못했고,

→ 스코틀랜드의 정세에도 어두웠다.

 

* 의회와의 대립 격화

→ 제임스 1세의 정책들을 

→ 더 강력하게 비타협적으로 강행함

 

 

* 대주교 로드(Lord)

✔ 찰스 1세가 신임함

✔ 완고한 국교회주의자

✔ 영국국교회를 가톨릭에 가까운방향으로 몰고감

✔ 청교도에 대한 박해 강화

 

 

* 청교도들의 대응

✔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

 

✔ 국내에 머문 청교도들은

절대왕권에 대항하는 세력을 구축,

→ 온건한 국교도조차 이들에 가담

 

 

* 왕실재정의 궁핍

✔ 찰스 1세, 에스파냐와 소규모 전쟁시작

✔ 프랑스와의 전쟁에도 말려듬

 

 

* 부족한 전비를 마련하기 위한 찰스 1세의 대응

✔ 부유한 신하로부터 돈을 강제로 차용

✔ 세대주의 비용으로 개인집에 병사를 숙박시킴

 

✔ 의회소집

→ 의회는 오히려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28)을 제출

→ 찰스는 부득이하게 이를 승인함

 

 

* [권리청원]

✔ 영국 헌정사상 중요한 문헌

✔ "의회의 승인없이 과세할 수 없다."

✔ "개인 집에 병사를 숙박시킬 수 없다."

✔ "평화시에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다."

✔ "자의적인 구속이나 투옥을 할 수 없다."

 

 

* 찰스 1세의 대응

1629년 의회를 해산한 후 11년간 소집하지 않음

 

대주교 로드와 보수적인 스트라포드 伯에 의지하면서

자의적인 전제정치를 실시함

 

① 의회의 승인없이 함부로 과세함

 

② 측근의 궁정인에게 각종 독점권의 혜택을줌

 

 

* 자의적인 과세의 대표 [선박세](ship money)

✔ 원래는 전시에 한하여

 해안지대에서 징수하는 세금이지만

 전국적이고 정상적인 세금으로 징수함

 

✔ 존 함프덴(John Hampden)은 이를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하여 패소하였으나

후에 반왕파의 지도자가 됨

 

 

* 선박세의 문제점

✔ 과세가 무거웠다기보다는

비합헌적으로, 즉 의회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징수되고,

 

✔ 징수된 세금이 궁정의 사치와 낭비 등

국민이 수긍할 수 없는 곳에 사용되었다는 데 있다.

 

✔ 그 결과 젠트리층을 중심으로

광범한 반대세력이 구축되고 강화되어갔다.

 

 

* 수많은 공업분야에 길드제도 강요

✔ 왕권의 통제를 강화하고 재정을 보충하려는 의도

 

 

* 심각한 불경기

✔ 수출의 주종을 이루던 '모직물수출'은

1620~1621년에 큰 타격을 받은 후,

종전상태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음

 

✔ 1630년대는 전반적으로

농작물의 작황이 좋지 않았음

 

✔ 이러한 경제적 불황은

혁명발생의 주된 원인은 아닐지 모르나,

광범하게 여러 사회층에 불만을 조성하게 하고,

 

✔ 그러한 불만 속에

찰스의 자의적이고 강압적인 재정정책이나

경제정책을 놓고 본다면

혁명으로의 길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런던 대상인들의 태도

✔ 왕권의 보호를 받고 지지해야 하지만

찰스의 무모한 경제정책 앞에

몸을 도사리게 됨

 

✔ [독점권의 난발]은

그 혜택을 받은자와 기득권자간에

마찰을 빚어내고,

모두 불만을 갖게 되었다.

 

✔ 그리하여 찰스가 긴급하게 돈이 필요하게된

결정적인 순간에 런던 상인은

왕의 재정적인 요청을 거부함

 

✔ 찰스는 하는 수 없이 의회를 소집함

 

 

* 의회 소집의 계기

✔ 1637년 대주교 로드가

스코틀랜드에 영국국교회를 강요한 데서 발생

 

✔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파는 단결하여

완강한 저항을 보임

 

✔ 런던상인들로부터 전비를 조달하지 못한 찰스는

1640년 의회를 소집하였다.

(단기의회, Short Parliament)

 

 

* 1640년의 단기의회

✔ 의회는 왕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놓음

 

✔ 찰스 1세는 곧 의회를 해산하였으나

재개된 스코틀랜드와의 전투에서 패함

 

✔ 찰스 1세는 하는 수 없이 의회를 다시 소집함

(장기의회, Long Parliament)

1640년 10월 ~ 16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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