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4절 영국의 절대왕정과 혁명
6. 청교도혁명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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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혁명에 대한 강한 부정적인 견해
✔ 혁명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존재
✔ 혁명을 '내란' 또는 '대반란'(Great Rebellion)
이라고도 부르는 사실에 잘 나타남
✔ 극단적인 경우
20년간에 걸친 혁명기간은
영국 역사상 무의미한 시대이며,
1660년은 곧바로 1640년의 연속이라는
의견도 있다.
* 청교도혁명의 적극적인 의의?
✔ 위의 왕당파적이고 비역사적인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청교도혁명의 적극적인 의의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 청교도혁명을 프랑스혁명과 동일한
시민혁명으로 보려는 일부 사회경제사가나
마르크스주의역사가의 견해는
그들 스스로 철회하였다.
→ 왜냐하면 혁명을 담당한 사회층이
→ 지주계급인 젠트리였고,
→ 그들이 왕당파와 의회파로 갈라졌다는 사실이
→ 움직일 수 없는 실증적인 연구로
→ 밝혀졌기 때문이다.
* 청교도혁명의 의의
✔ 튜더시대 이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귀족계급을 잠식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계속해온
젠트리층을 주축으로하여 절대왕정의
전제정치를 타도하고,
✔ 의회를 중심으로 영국 고유의 전통적인
헌정상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확립하려는
혁명이었다.
✔ 왕정복고로 그 뜻의 달성이 일시 중단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명예혁명으로 그 뜻이 이루어지고,
당시 대륙에서는 절대왕정이 더욱 그 기반을 굳히면서
전성기로 향하고 있던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청교도혁명의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하겠다.
* 청교도혁명에 있어 사회경제적 요인의 작용
✔ 직접적으로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음
✔ 혁명 자체가 이 분야에서 달성한 것도 없음
✔ 젠트리나 부르주아지가 다같이
왕당파와 의회파로 나누어지기도 하였으나,
✔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긴 안목에서 본다면 청교도혁명은
자본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
✔ 의회파의 중심이 된 젠트리나 부르주아지는
근대사회의 발전을 지향하는
진보적 세력이요, 계층이었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청교도 혁명은
→ 프랑스혁명과 같이 선명하지는 않으나
→ 넓은 의미로 시민혁명의 범주에 속한다고
→ 할 수 있을 것이다.
* 혁명중 사회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의 전개
✔ 청교도혁명은 근대사회와 민주주의가
싹트고 성장할 기름진 사상적 옥토였다.
✔ 『대낙원』의 시인 밀턴(John Milton)은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언론의 자유를 주장함
✔ '수평파'는 그들의 정치강령으로 제시한
『인민협정』(Agreement of the People)에서
보통선거, 의회의 정기적 소집, 과세의 합리화,
법의 평등하고 공정한 운영 등,
후대에 실제로 실현된 중요한 민주주의 사상을
전개하였음
//* 이 밖에 '진정한 수평파'를 자칭하는
윈스탠리(G. Winstanly)의 '디거즈'(Diggers),
제5왕국파(Fifth Monarchyu Man) 등
정치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으나
사상적으로 흥미있는 집단이 많이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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