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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4편9장1절 / 12. 발명과 과학

by 대군장 2022. 4. 6.

4편 중세로부터 근대로의 이행

9장 근대사회의 태동

1절 르네상스

12. 발명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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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3대 발명>

* 제약 속에서 싹튼 자유로운 탐구정신의 산물

* 근대과학의 초석을 다짐

 

 

1. [화약]

* 중국에서 발명

// 이슬람을 통하여 유럽에 전해짐

// 개량을 거듭하여 15세기 초에 실전사용

 

* 화기와 대포의 사용

// 봉건기사의 몰락 초래

// 봉건적인 성채도 무용지물로 만듦

 

 

2. [나침반]

* 중국기원

// 개량을 거듭한 것

 

 

3. [활판인쇄술]

*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 1400?~1468)

// 활판인쇄술 발명했다는데

// 이론(異論) 존재하긴 함

→ 1440년대에 라인란드 지방에서

→ 활자가 발명된 것만은 거의 틀림없음

 

* 활판인쇄술 발명의 요인

// (1) 중국으로부터 종이 전래

→ 필사에 사용되던 양가죽보다 훨씬 저렴

 

// (2) 목판, 동판을 만들어 복사하는 기술 발달

 

 

* 활판인쇄술의 보급

// 1500년경의 이탈리아

→ 활자를 이용하는 인쇄소 73개소

 

* 활판인쇄술 보급의 영향

// (1) 종래의 필사본에 비해 훨씬 정확한

// 고전의 권위있는 판본, 서적들이

// 값싸게 다량으로 제작됨

→ 지식, 정보의 신속한 전달, 보급에 공헌

 

 

<자연과학>-----------------------------

* 중세 말 로저 베이컨

// 실험과학 주장

 

* 여전한 제약

// 종교적 제약

// 자연과학 발달 억제

 

* 르네상스기

// 고대의 권위가 새로운 발달을

//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함

 

*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탐구정신

// 여러 제약을 극복

// 근대과학의 초석을 다짐

 

 

<17세기 과학혁명의 준비>----------------------

* 해부학의 베살리우스(Vesalius, 1514~1564)

// 벨기에 출신, 파리에서 공부

// 이탈리아 파두아(Padua) 대학에서 교편 잡음

 

// 『인체구조론』 (De Humans Corporis Fabrica)

→ 1543년 출판

→ 고대의학의 권위자였던 갈레노스의 견해를

→ 많이 답습하기는 했으나, 비판적으로 대함

 

// 인체구조론에서 배격된 갈레노스의 설명 사례

→ "혈액순환은

→ 심장을 두 부분으로 갈라놓고 있는

→ 두꺼운 조직의 벽에 뚫린

→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으로

→ 피가 심장의 한 쪽에서

→ 다른 부분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 갈레노스의 혈액순환론을 배격

→ 하비의 혈액순환론 준비함

 

→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많은 해부를 통하여

→ 비슷한 발견에 도달하였으나

→ 갈레노스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어

→ 후퇴하고 말았음.

 

 

*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

// 태양중심설 제시

// 독일계 폴란드인

// 파두아 등 이탈리아 여러 대학에서

→ 의학, 법률을 배움

 

// 단치히 근처의 교회 성직자로 30년을 보냄

 

//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에 의문을 품음

→ 1520년대에 '지동설'에 관한 이론을 세움

→ 당시의 여건을 고려, 정식 공표하지 않음

 

//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1543)

→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 죽기 1년전에 지동설 공표 결심

→ 임종직전에 발표

→ 천체의 운행에 관한 혁명적인 이론 실음

→ 당시 사람들은 '천동설' 고집

→ 코페르니쿠스의 이론 자체에도 결함존재

→ 지동설의 확립은 17세기 과학혁명시기

 

// 지동설의 수용

→ 프란시스 베이컨, 파스칼, 밀턴 등

→ 16세기 말로부터 17세기에 걸친

→ 제 1급에 속하는 지성인, 학자들도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 가톨릭 교회는 1615년에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정식으로 배격하고,

→ 1616년에는 그의 저서를

→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 가톨릭교회가 지동설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것은

→ 1757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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