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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사통론

고려 후기 군사제도의 변화

by 대군장 2022. 10. 27.

<2군6위 군사제도 붕괴>

(1) 2군6위제 형해화

→ 다만 무반의 관직체계로서 구실

 

* 원인
① 군인전의 피탈에 따른 군호의 몰락은

 2군6위의 상비군 조직을 존속할 수 없게 하였다.

 

② 예종시기 '별무반'의 설치와 무신정권기 '도방'의 사병조직

및 '삼별초군'의 존재는 공병제 붕괴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

 

//* 도방

→ 무신정권을 보위한 사병조직

→ 초기에는 6번교대, 뒤에는 36번으로 확대 *//

 

//* 삼별초

→ 경찰임무를 지닌 야별초가 좌우로 나뉘고

→ 여기에 몽고와의 항쟁 때 포로로 되었다가 도망친 사람들로 구성된

→ '신의군'이 합한 것

→ 국가 공병이었으나 최씨정권의 사은을 입어 사병화 *//

 

 

<몽고간섭기 고려군제>--------------------------------------------

(1) 몽고의 영향을 받아 '만호제'를 기간으로 편성

 

① 충렬왕 일대에 5만호부 완성

1) 두 차례의 일본정벌 실패로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1281년(충렬왕 7) 남해안에 [금주만호부] 설치

(정식명칭: '금주등처진변만호부' 뒤에 '합포만호부'로 개칭)

 

이어서 [전라만호부](전라도진변만호부)와 [탐라만호부]를 두어

방위케 함

 

2) 중앙에는 포도와 금란을 맡은 [순군만호부] 설치

3) 서경에는 수군을 맡은 [서경만호부](서경등처관수군만호부) 설치

 

(금주만호부, 전라만호부, 탐라만호부, 순군만호부, 서경만호부)

 

 

 

② 만호부 

→ 만호, 천호, 백호

→ 군령기관인 '진무소'

→ 행정기관인 '수령관' 등으로 구성

 

→ 일단 만호가 되면 원으로부터 '호부', '금패'가 수여되고 세습허용됨

 

 

 

③ 공민왕 반원개혁정치로 5만호부 폐지

→ 만호부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고려말기 군제>--------------------------------------

(1) 만호부, 방수군제와 함께 새로이 [원수제]가 가미됨

 

① 만호부, 방수군

→ 지방 토착인들로 조직

 

② 원수

→ 중앙군의 지휘관으로 외적 침입시 출정

→ 사병적 성격이 강한 것

 

 

③ 각 도

→ 3원수 설치

→ 중앙의 '도통사'의 지휘를 받음

 

 

(2) 1388년의 요동정벌

* 최고지휘관으로 '8도도통사'와 '좌우도통사'가 조직

→ 휘하에 원수제를 기반으로 3군이 구성됨

→ 여기에는 8도 '시위군'과 개경 '방리군' 등이 참전하였으나

→ 사적 지휘체제가 바탕이 된 원수제에 의하여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3) 이성계의 정권장악 이후

* 삼군도총제부 설치

→ 자신이 삼군도총제사가 됨

→ 사병적 성격을 지닌 원수제를 약화시킴

→ 집권적인 군대 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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