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6위 군사제도 붕괴>
(1) 2군6위제 형해화
→ 다만 무반의 관직체계로서 구실
* 원인
① 군인전의 피탈에 따른 군호의 몰락은
2군6위의 상비군 조직을 존속할 수 없게 하였다.
② 예종시기 '별무반'의 설치와 무신정권기 '도방'의 사병조직
및 '삼별초군'의 존재는 공병제 붕괴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
//* 도방
→ 무신정권을 보위한 사병조직
→ 초기에는 6번교대, 뒤에는 36번으로 확대 *//
//* 삼별초
→ 경찰임무를 지닌 야별초가 좌우로 나뉘고
→ 여기에 몽고와의 항쟁 때 포로로 되었다가 도망친 사람들로 구성된
→ '신의군'이 합한 것
→ 국가 공병이었으나 최씨정권의 사은을 입어 사병화 *//
<몽고간섭기 고려군제>--------------------------------------------
(1) 몽고의 영향을 받아 '만호제'를 기간으로 편성
① 충렬왕 일대에 5만호부 완성
1) 두 차례의 일본정벌 실패로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1281년(충렬왕 7) 남해안에 [금주만호부] 설치
(정식명칭: '금주등처진변만호부' 뒤에 '합포만호부'로 개칭)
이어서 [전라만호부](전라도진변만호부)와 [탐라만호부]를 두어
방위케 함
2) 중앙에는 포도와 금란을 맡은 [순군만호부] 설치
3) 서경에는 수군을 맡은 [서경만호부](서경등처관수군만호부) 설치
(금주만호부, 전라만호부, 탐라만호부, 순군만호부, 서경만호부)
② 만호부
→ 만호, 천호, 백호
→ 군령기관인 '진무소'
→ 행정기관인 '수령관' 등으로 구성
→ 일단 만호가 되면 원으로부터 '호부', '금패'가 수여되고 세습허용됨
③ 공민왕 반원개혁정치로 5만호부 폐지
→ 만호부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고려말기 군제>--------------------------------------
(1) 만호부, 방수군제와 함께 새로이 [원수제]가 가미됨
① 만호부, 방수군
→ 지방 토착인들로 조직
② 원수
→ 중앙군의 지휘관으로 외적 침입시 출정
→ 사병적 성격이 강한 것
③ 각 도
→ 3원수 설치
→ 중앙의 '도통사'의 지휘를 받음
(2) 1388년의 요동정벌
* 최고지휘관으로 '8도도통사'와 '좌우도통사'가 조직
→ 휘하에 원수제를 기반으로 3군이 구성됨
→ 여기에는 8도 '시위군'과 개경 '방리군' 등이 참전하였으나
→ 사적 지휘체제가 바탕이 된 원수제에 의하여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3) 이성계의 정권장악 이후
* 삼군도총제부 설치
→ 자신이 삼군도총제사가 됨
→ 사병적 성격을 지닌 원수제를 약화시킴
→ 집권적인 군대 통할
'한국사 > 한국사통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전기 왕권의 강화 (0) | 2022.11.01 |
---|---|
조선의 건국과 집권화 정책 (0) | 2022.11.01 |
고려 지방제도의 발전 (0) | 2022.10.27 |
고려후기 중앙정치체제의 변화 (235~238) (0) | 2022.10.25 |
1장1절 / 2. 한반도의 구석기인 (0) | 2022.04.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