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사/서양사개론

5편10장2절 / 1 . 합스부르크와 발루아

by 대군장 2022. 4. 29.

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2절 절대왕정기의 각국의 발전(1): 서유럽

1. 합스부르크와 발루아

-----------------------------------------

<16세기>

* 지리상의 발견

// 유럽인의 신대륙, 아시아방면 진출

 

* 유럽내

// 종교개혁

 

*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실

// 초국가적인 제국건설을 원함

 

* 프랑스의 발루아(Valois) 왕실

// 합스부르크의 세력확장을 저지하려고 노력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실>-------------------

* 알브레히트 5세(Albrecht Ⅴ, 1438~1439)

// (1) 143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됨

// (2) 이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실이

// 대대로 제위계승

 

*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1493~1519)

// (1) 거대한 왕조적 제국으로 팽창시작

// (2) 부르고뉴 공령의 상속녀와 혼인함

→ 부유한 경제중심이었던 네덜란드 획득

 

// (3) 오스트리아 주변영역을 통합함

→ 은광으로 유명한 '티롤'(Tyrol)을 포함

 

// (4) 보헤미아, 헝가리왕가와 인척관계 형성

 

* 펠리페 1세

// (1) 막시밀리안 1세의 맏아들

// (2) 에스파냐왕실과 혼인

→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의 딸인

→ 후아나 1세(Juana Ⅰ)와 결혼

→ 프랑스의 루이 11세를 견제하기 위해

→ 합스부르크 왕가와

→ 트라스타마라 왕가가

→ 동맹을 맺기위해 이루어진 것

→ 거대한 합스부르크제국 출현

 

// (3) 에스파냐의 왕위계승권자 차례로 요절

→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라 사망(1504)

→ 에스파냐 왕위는 막시밀리안의 아들

→ 펠리페 1세에게 시집온

→ 후아나 1세에게 넘어옴

 

// (4)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사망 (1516)

→ 유언에 따라

→ 1506년 사망한 펠리페 1세의 장남

→ '카알'이 에스파냐왕국과

→ 그 해외식민지를 포함한 전 영토를 계승하게됨

 

* 카알 5세

// (1)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선출(1519)

→ 프랑스의 프랑수와 1세(Francois, 1515~1547)

→ 와의 경쟁에서 승리

 

// (2) 해외식민지를 제외한 유럽 내의 보유영토

→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독일 여러지역

→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 보헤미아와 헝가리

→ 프랑슈 콩테(Franch-Comte)

→ 밀라노, 나폴리

→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 기타 지중해 연안의 에스파냐령

 

 

<카알 5세의 합스부르크 제국>-----------------

* 견고한 통일적 제국은 아니었음

// 성립경위, 지리적분포로 파악 가능

 

* 여러 국가, 지역의 집합체에 불과

// 혼인관계와 상속으로 획득한 지역

// 저마다 역사적 전통, 사회구조를 달리함

// 그렇긴 해도 주변국에 위협적인 존재였음

→ 거대한 세력을 형성

 

* 프랑스

// (1) 합스부르크 제국에 위협을 느낌

// (2)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

// (3) 비교적 넓은 영토를 가진

// 통일국가로 발전 시작

 

// (4) 여러 지역에서 대립관계 형성

→ 중세 말 이래 나폴리왕국에서

→ 에스파냐의 아라곤과 대립관계

 

→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 합스부르크 왕실과 대립관계

 

 

* 이탈리아(특히 북부)

// (1) 16세기 전반 지리상 발견 이전

→ 유럽 경제의 중심

 

// (2) 이탈리아 쟁탈전

→ 카알 5세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 프랑수와 1세를 중심으로한 발루아왕실

 

 

* 카알 5세에게 불리했던 점

// (1) 그의 광대한 제국은 결코 통일적인

// 성질의 것은 아니었음

 

// (2) 독일은 영방국가와 자유도시의

// 연합체였을 뿐만 아니라

// 영방군주들은 주권국가로서

// 독립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였음

// 또한 때마침 종교개혁 바람이 

// 거세게 불고 있었음

 

// (3)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투르크가

// 그 세력을 신장시켜 동남쪽으로부터

// 보헤미아와 헝가리를 침공하고,

// 1529년에는 수도 '빈'을 위협하는

// 형세였다.

 

→ 오스만 투르크의 침공과 위협은

→ 종교개혁의 진행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 1699년 '젠타'(Zenta)의 전투에서

→ 오스트리아가 승리하여

→ [칼로비츠 조약](Karlowiz)을 

→ 맺은 후의 일이다.

 

// (4) 프랑수아 1세는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 이교도인 투르크와 동맹을 맺는 것 까지도

// 사양하지 않았음

 

 

<합스부르크와 프랑스의 화평>-----------

* 카토-캄브레지 조약(1559) (Cateau-Cambresis)

// (1) 뚜렷한 승패를 가리지 못함

// (2) 프랑스

→ 이탈리아를 포기함

→ 라인강변의 요지인

→ 메쓰(Metz), 툴(Toul), 베르됭(Verdun)을 획득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