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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사개론

5편10장2절 / 2. 에스파냐의 융성과 몰락

by 대군장 2022. 4. 29.

5편 근대사회의 성립

10장 절대왕정시대

2절 절대왕정기의 각국의 발전(1): 서유럽

2. 에스파냐의 융성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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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알 5세

// (1) 발루아왕실과의 오랜 투쟁에서

// 제국건설의 꿈이 깨짐

 

// (2) 루터파의 탄압을 체념함

//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를 맺음

 

// (3) 1556년 퇴위

 

* 페르디난드 1세(1556~1564)

// 카알 5세의 동생

// 카알 5세로부터 제위를 넘겨받음

 

* 펠리페 2세(1556~1598)

// (1) 카알 5세의 아들

 

// (2) 카알 5세로부터 물려받은 것

→ 에스파냐 왕위

→ 네덜란드

→ 프랑슈 콩테,

→ 밀라노, 나폴리, 시칠리아

→ 에스파냐령 해외식민지

→ 영국의 가톨릭 여왕 메리(1553~1558)와 혼인

 

// (3) 카알 5세의 의도(추측)

→ 영방군주들의 저항이 심한 독일제국을 버리고

→ 유럽의 새로운 세계경제 중심으로

→ 부상하기 시작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에

→ 영국을 결합시킴으로써

→ 합스부르크제국과는 다른

→ 또 하나의 초국가적인 제국을

→ 아들 대에 꿈꾸었을지도 모름

 

* 카토-캄브레지 조약(1559)

// (1) 합스부르크의 제국건설에 종지부를 찍음

// (2) 이후 1세기에 걸친

// 새로운 유럽 국제질서의 출발점

 

// (3) 이를 전후하여 유럽경제도 새로운 국면 돌입

 

- 1557년 펠리페 2세 파산선고

막대한 액수의 일시 차입금을

→ 장기공채화 한다고 선언함

 

1575년에도 동일한 조치 시행

 

- 국제적인 대금융가들 몰락

→ 한 시대를 지배했던

→ 남부독일의 후거가문 포함

→ 막대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여 몰락

 

 

 

 

* 시대적 배경

→ ① 절대왕정에 입각한

→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중

 

→ ② 지리상 발견의 경제적 결과가

→ 서서히, 그러나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

 

 

<16세기 에스파냐의 우월한 지위>-----------

* 유럽에서의 우월한 지위

// (1) 카알 5세로부터 시작

// (2) 펠리페 2세 때도 지속

→ ① 지중해로 진출해 오는 투르크를

→ '레판토'(Lepanto)해전에서 격파(1571)

→ 지중해의 패권 확보

 

→ ② 포르투갈 합병(1580)

→ 에스파냐의 우월 절정

 

* 에스파냐 지위의 경제적 요인

// (1) 신대륙과의 무역

→ 특히 막대한 양의 귀금속의 유입

 

// (2) 신대륙과의 무역은

// 세비야(Seville)의 상무원(Casa de Contratacion)

// 을 통한 독점적인 국가사업이었음

 

* 무역의 혜택과 귀금속의 사용

// (1) 지속적인 국부증진의 기반조성에

// 유효하게 사용되지 않음

 

// (2) 과도하게 비대해지고 비능률적인

// 관료제의 유지와 귀족과 궁정의 사치,

// 끊임없는 전쟁비용으로 지출됨

 

// (3) 에스파냐의 사회구조와 경제의 취약성으로

// 모처럼 유입된 귀금속을 

// 다시 국외로 유출하게 됨

 

 

<에스파냐의 경제형태>--------------------

* 봉건제도, 장원제도 성립하지 않았음

// (1) 특수한 배경

→ 재정복에 의한 국가건설

 

// (2) 농민에게 유리하기보다 불리하게 작용

토지는 귀족과 교회에 집중됨

세금과 귀족에 대한 공납으로 농민은 빈곤

 

*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

// (1) 이동목양자 조합인 [메스타](Mesta)

→ 특권보유 횡포 자행

→ 봄가을로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 이동하는 양떼와 

→ 그것에 주어진 특권으로 

→ 농업은 큰 타격을 받음

 

// (2) 농업

→ 왕실재정의 주된 원천인 메스타 앞에

→ 농업이 희생하는 상황

 

// (3) 모리스코(Morisco)의 추방

→ 편협한 종교정책으로

→ 17세기 초에

→ 이슬람계 원주민 추방

→ 약 30만명 정도

 

→ 농민엘리트라고 불릴정도로 우수한

→ 농업기술의 소유자였기에

→ 농업에 큰 타격을 줌

 

 

<에스파냐의 상공업의 쇠퇴>--------

* 공업

// (1) 중세말 이후 모직물공업 발전 시작

 

// (2) 신대륙 귀금속의 유입

→ 정부의 공업 보호육성책 부재

 

// (3) 기술의 후진성

 

// (4) 네덜란드, 특히 영국산 모직물과의

// 경쟁에서 패배

 

 

* 상업

// (1) 신대륙과의 무역

→ ① 세비야 상무원에 의해 독점

→ ② 상공부르주아지가 성장할 좋은 기회였음

 

// (2) 돈을 번 부르주아지의 선택

→ ① 토지를 구입하고 귀족의 지위를 사들여

→ 비생산적인 계층으로 전신하기를 원함

 

// (3) 부르주아지 나태?의 결과

→ ① 에스파냐의 최대 상품인

→ 메스타의 양모를 포함하여

→ 국내상품만으로는 필요한 외국상품을

→ 조달할 수 없었음

 

→ 1558년의 거의 유일한 자료에 의하면,

→ 에스파냐의 네덜란드와의 수출입비율은

→ 수출이 1에 수입이 8 내지 10이었다.

 

무역적자 차액을 화폐로,

→ 즉 은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음

→ 세비야로 들어온 귀금속은

→ 곧바로 외국으로 흘러나감

 

 

<에스파냐제국의 쇠퇴>----------------

* 가톨릭 신앙을 일률적으로 강요

// 광대한 영토를 통합하기 위함

 

* (1) 레판토해전

// 에스파냐의 국력 과시

// 그리스도교에게 지중해를 확보해줌

// 막대한 전비지출 발생

 

* (2) 프랑스 종교전쟁에 개입

// 막대한 전비지출 발생

 

* (3) 네덜란드 상실

 

* (4) 무적함대 패배(1588) - Invincible Armada

// 신교도인 영국여왕을 응징하려 했으나 실패

→ 에스파냐제국의 쇠퇴 계기

 

* (5) 귀금속 유입의 감소

// 17세기의 3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

→ 귀금속유입의 급격한 감소는

→ 신대륙에서의 광산 자체의 고갈에도

→ 그 원인이 있지만,

→ 멕시코가 필리핀을 거쳐 중국과의 무역으로

→ 대량의 은을 유출시킨 데도 기인한다.

 

* (6) 인구감소

// 16세기 초의 인구는 약 8백만

// 17세기 초에는 약 6백만 정도로 감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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